
<현대 면역학> I.2.2 선천면역세포: 대식세포, 호중구, 수지상세포, 자연살해세포(NK cell)
이전 편에서는 우리 몸의 모든 면역세포가 단 하나의 ‘조혈모세포’에서 시작되는 경이로운 여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여정을 통해 탄생한 용사들을 직접 만나볼 차례입니다. 그 첫 번째 주자들은 바로, 우리 몸에 적이 침입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 나가 싸우는 최전선의 방어군, 선천면역세포들입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임무에 따라, 별도의 학습 없이도 즉각적으로 적을 인지하고 공격하는 신속대응팀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이 용맹한 선천면역세포 군단의 핵심 멤버인 ‘4인의 용사’ – 대식세포, 호중구, 수지상세포, 그리고 자연살해세포(NK세포) – 의 개성과 활약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만능 야전 사령관, 대식세포 (Macrophage)
이름부터 ‘크게 먹는 세포(Big Eater)’라는 위압적인 뜻을 가진 대식세포는 선천면역세포 군단의 실질적인 야전 사령관이자, 가장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적을 먹어 치우는 것을 넘어, 조직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면역 반응의 시작과 끝을 조율하는 복합적인 임무를 수행합니다. 대식세포 하나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곧 선천면역의 절반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혈액 속 순찰병에서 조직의 터줏대감으로
모든 대식세포는 혈액 속을 떠다니는 ‘단핵구(Monocyte)’라는 미성숙한 형태로 그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단핵구는 일종의 순찰병으로, 혈관을 따라 온몸을 순회하다가 특정 조직에서 신호가 오면 혈관을 뚫고 나와 그 조직에 완전히 정착합니다. 조직에 정착한 단핵구는 비로소 ‘대식세포’라는 이름의 성숙한 세포로 분화하여, 그 조직의 환경에 맞는 특화된 ‘터줏대감’으로 거듭납니다.
조직 맞춤형 전문가들
각 조직에 정착한 대식세포는 저마다 다른 이름과 특화된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 간 (Liver): ‘쿠퍼 세포(Kupffer cell)’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장에서 혈류를 타고 들어오는 세균이나 독소들을 가장 먼저 걸러내는 중요한 필터 역할을 합니다.
- 폐 (Lungs): ‘폐포 대식세포(Alveolar macrophag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우리가 숨 쉴 때 들어오는 먼지, 알레르겐, 병원균 등을 끊임없이 청소하여 폐의 청결을 유지합니다.
- 뇌 (Brain): ‘미세아교세포(Microgli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중추신경계의 유일한 면역세포로서 손상된 뉴런을 제거하고 신경 회로를 보호하는 섬세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 뼈 (Bone): ‘파골세포(Osteoclast)’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낡은 뼈를 녹여 제거하고 새로운 뼈가 생성될 공간을 만들어주는 뼈 리모델링의 핵심 역할을 담당합니다.
상황에 따라 변신하는 두 얼굴: M1과 M2 대식세포
대식세포의 가장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성격과 역할을 180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크게 ‘전사형(M1)’과 ‘치유형(M2)’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합니다.
M1 대식세포: 불을 뿜는 전사 (Classically Activated)
세균 감염과 같은 급박한 전투 상황이 발생하면, 대식세포는 주변의 신호(인터페론 감마 등)를 받아 M1 형태로 각성합니다. 이 상태의 대식세포는 매우 공격적입니다.
- 강력한 살균 능력: 산화질소(NO)와 같은 강력한 독성 물질을 뿜어내어 삼킨 세균을 효과적으로 죽입니다.
- 염증 촉진: 염증을 일으키는 사이토카인(TNF-α, IL-1β 등)을 대량 분비하여 주변의 다른 선천면역세포들을 전투 현장으로 불러 모으고, 전면전을 유도합니다.
M2 대식세포: 상처를 치유하는 건설자 (Alternatively Activated)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염증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대식세포는 M2 형태로 변신합니다. 이 상태의 대식세포는 조직의 회복과 치유에 집중합니다.
- 염증 억제: 염증을 가라앉히는 사이토카인(IL-10 등)을 분비하여 과도한 면역 반응을 종결시킵니다.
- 조직 재생 촉진: 죽은 세포 찌꺼기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새로운 혈관 생성과 조직 재건에 필요한 성장 인자들을 분비하여 상처가 원활하게 아물도록 돕습니다.
이처럼 대식세포는 감염 초기에는 염증을 일으키는 ‘전사’였다가, 전투가 끝나면 조직을 복구하는 ‘건설자’로 변신하는 놀라운 가소성(Plasticity)을 지닌, 우리 몸에서 가장 지능적인 선천면역세포 중 하나입니다.
야전 사령관의 핵심 임무 요약
결론적으로 대식세포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통해 면역계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 포식 및 제거 (Phagocytosis): 침입한 병원균과 죽은 세포를 제거하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
- 면역 반응의 개시 (Antigen Presentation): 포식한 적의 정보를 T세포에게 전달하여 적응면역을 활성화시키는 연결고리 역할.
- 염증과 치유의 조절 (M1/M2 Polarization): 전투 상황에서는 염증을 촉진하고, 회복기에는 염증을 억제하고 조직을 재생시키는 면역 반응의 총괄 지휘자.
이처럼 단순히 ‘먹는 세포’를 넘어,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의 역할을 바꾸며 전체 면역 반응을 조율하는 능력이야말로 대식세포를 ‘만능 야전 사령관’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최정예 돌격대, 호중구 (Neutrophil)
만약 우리 몸의 면역계를 군대에 비유한다면, 호중구는 단연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적진에 뛰어드는 용맹한 돌격대이자, 임무 완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지는 ‘자폭 부대’와 같습니다. 우리 혈액 속을 흐르는 백혈구의 50~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선천면역세포인 호중구는, 감염 신호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현장으로 달려가 초동 진압에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짧고 굵은 삶: 오직 전투를 위해 태어난 세포
호중구의 삶은 매우 짧고 강렬합니다. 골수에서 매일 1,000억 개 이상 어마어마한 양이 생산되어 혈액으로 방출된 뒤, 보통 10시간에서 하루 남짓 혈관을 따라 순찰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 기간 동안 아무런 전투 신호가 없으면 조용히 세포 사멸 과정을 통해 사라집니다. 이들은 다른 선천면역세포인 대식세포처럼 조직에 정착하여 오래 사는 터줏대감이 아닙니다. 이들의 존재 이유는 오직 ‘전투’, 즉 급성 감염에 대한 신속한 대응뿐입니다.
사이렌을 듣고 출동하다: 화학주성과 혈관이탈
감염이나 조직 손상이 발생하면, 해당 부위의 대식세포나 조직 세포들은 ‘케모카인(Chemokine)’이라는 화학적 구조 신호(SOS 신호)를 발신합니다. 혈관을 순찰하던 호중구는 이 사이렌 소리를 감지하고 즉시 반응합니다.
- 정지 및 부착: 호중구는 혈관 내벽에 속도를 늦춰 달라붙습니다.
- 혈관 이탈 (Diapedesis): 마치 젤리처럼 자신의 몸 모양을 유연하게 바꾸어 좁은 혈관 벽의 세포 틈을 비집고 빠져나갑니다.
- 현장 돌진: 구조 신호가 더 강하게 오는 방향을 향해 아메바처럼 이동하여 수 분 내에 전투 현장에 도착합니다.
이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동원 능력이야말로 호중구를 선천면역세포 최고의 돌격대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단기 결전을 위한 3가지 필살기
전투 현장에 도착한 호중구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강력한 무기를 퍼붓습니다.
- 신속한 포식 작용 (Phagocytosis): 대식세포처럼 적을 삼키지만, 그 목적은 다릅니다. 대식세포가 정보를 분석하기 위해 적을 ‘생포’하는 것에 가깝다면, 호중구는 오직 ‘파괴’를 위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웁니다.
- 화학 무기 살포 (Degranulation): 호중구의 세포질에는 강력한 살균 물질이 가득 담긴 여러 종류의 ‘과립’이 있습니다. 적과 마주치면 이 과립들을 터뜨려 내용물을 쏟아붓습니다. 이 과립에는 세균의 세포벽을 녹이는 라이소자임,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 그리고 활성산소(ROS)를 만들어내는 ‘미엘로페록시다아제(MPO)’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름이 녹색 빛을 띠는 이유가 바로 이 MPO 효소의 색깔 때문입니다.
- 최후의 자폭 그물 (NETosis): 호중구가 사용하는 가장 독특하고 강력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수적으로 불리하거나 적이 너무 클 때, 호중구는 자신의 핵을 폭파시켜 그 안에 있던 DNA 가닥들을 뿜어냅니다. 이 DNA는 끈적끈적한 그물이 되어 주변의 세균들을 꼼짝 못 하게 옭아매고, 그물에 붙어 있던 강력한 살균 단백질들이 세균을 서서히 죽입니다. 이 궁극의 기술을 시전한 호중구 자신은 장렬히 전사하게 되며, 이들의 시체와 전쟁의 잔해가 바로 우리가 상처에서 흔히 보는 ‘고름’의 주성분이 됩니다.
통제되지 않는 힘의 위험성
이처럼 강력한 선천면역세포인 호중구의 공격성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화학 무기와 그물은 피아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전투가 길어지거나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주변의 정상적인 우리 몸의 조직까지 손상시키는 ‘부수적 피해’를 일으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에서 관절이 파괴되거나, 급성 폐 손상 시 폐 조직이 망가지는 데에도 이 호중구의 과도한 활성이 깊이 관여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강력한 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매우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우리 몸에서 가장 위험한 선천면역세포이기도 합니다.
최고의 정보 분석가, 수지상세포 (Dendritic Cell)
선천면역세포 군단에서 어쩌면 가장 과소평가되었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를 꼽으라면 단연 수지상세포일 것입니다. 나뭇가지(樹枝)처럼 생긴 긴 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이 세포는, 직접 싸우는 능력보다는 우리 면역계의 두 축인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을 완벽하게 이어주는 ‘정보 전달자’이자 ‘연결고리’로서의 가치가 훨씬 더 큽니다. 이들의 발견과 기능 규명은 현대 면역학의 흐름을 바꿨고, 2011년 랄프 슈타인만 박사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된 최고의 감시병
수지상세포는 우리 몸의 최전방, 즉 외부 환경과 직접 맞닿는 모든 곳에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피부의 표피층(여기서는 ‘랑게르한스 세포’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코, 폐, 위, 장의 점막 등 병원균이 침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로에 촘촘한 감시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긴 나뭇가지 같은 돌기를 끊임없이 주변으로 뻗어 환경을 샘플링하며, 마치 최첨단 레이더 기지처럼 침입자의 신호를 감시합니다.
포식자에서 메신저로의 극적인 변신
수지상세포의 삶은 침입자를 만나는 순간을 기점으로 180도 변합니다. 침입자를 만나기 전의 ‘미성숙’ 수지상세포는 포식 능력이 매우 뛰어난 상태로, 주변의 항원을 적극적으로 집어삼키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일단 병원체를 포획하면, 이들은 극적인 ‘성숙’ 과정을 겪으며 변신합니다.
- 포식 중단: 더 이상 항원을 잡아먹는 것을 멈춥니다. 임무가 ‘포획’에서 ‘보고’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 표면 변화: 세포 표면에 포획한 항원 조각(MHC 분자)과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각종 ‘보조 자극 분자’들을 대량으로 발현시키며, 보고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 이동 개시: 성숙한 수지상세포는 자리를 떠나, 림프관을 통해 가장 가까운 면역 사령부인 ‘림프절’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변신 과정은 마치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한 정보요원이, 현장을 떠나 모든 증거물을 챙겨 본부로 향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적응면역을 깨우는 3가지 신호: 가장 완벽한 브리핑
림프절에 도착한 수지상세포는 수많은 T세포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자신이 가져온 항원 정보와 정확히 일치하는 T세포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선천면역세포도 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하고 전문적인 브리핑을 통해 잠자던 T세포를 깨웁니다. 이 브리핑은 3가지 핵심 신호로 이루어집니다.
- 신호 1 (적의 몽타주): “이런 얼굴의 적이 나타났다.” (MHC 분자를 통해 항원을 제시)
- 신호 2 (실제 위험 경보): “이건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며, 매우 위험한 적이다.” (보조 자극 분자를 통해 T세포의 활성화를 유도)
- 신호 3 (작전 지침): “이 적의 특성에 따라 이런 방식(Th1, Th2 등)으로 싸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정 사이토카인을 분비하여 T세포의 분화 방향을 결정)
다른 세포들이 단순히 ‘적이 나타났다’는 사실만 알리는 데 그친다면, 수지상세포는 적의 신원, 위험 등급, 그리고 효과적인 공격 전략까지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수지상세포는 ‘가장 전문적인 항원 제시 세포(The Most Professional APC)’라고 불리며, 이들의 정교한 브리핑이 있어야만 비로소 강력한 적응면역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을 가장 정밀하게 연결하는 선천면역세포입니다.
고요한 암살자, 자연살해세포 (NK cell, Natural Killer Cell)
선천면역세포 군단의 마지막을 장식할 용사는 가장 독특하고 미스터리한 존재, 바로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 NK세포)입니다. 이름 그대로 ‘타고난 암살자’인 이 세포는, 다른 세포들처럼 적을 먹어 치우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대신, 오직 ‘제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고독한 특수부대입니다. 다른 선천면역세포들이 주로 외부에서 온 ‘이방인’을 상대하는 반면, NK세포는 우리 편이었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암세포로 변질되어 버린 ‘내부의 변절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사전 정보 없이도 즉각 반응하는 타고난 킬러
NK세포가 특별한 이유는 ‘자연살해’라는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이들은 적응면역의 T세포처럼 특정 항원에 대해 미리 학습하거나 활성화되는 과정(감작)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저 태어난 그대로의 상태에서, 비정상적인 세포를 발견하는 즉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별도의 지령이나 사전 정보 없이도,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최정예 암살자와 같습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NK세포는 우리 몸의 초기 ‘면역 감시(Immune Surveillance)’ 시스템에서 암세포나 바이러스 감염 세포가 세력을 키우기 전에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선천면역세포입니다.
‘신분증 검사’와 ‘수상한 행동’을 동시에 감시하는 이중 감시 시스템
그렇다면 NK세포는 어떻게 아군과 변절한 적군을 정확히 구별할까요? 이들은 매우 정교한 이중 감시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1. 신분증이 없는 자를 찾아라: ‘사라진 자아’ 가설 (Missing-Self Hypothesis)
NK세포는 순찰을 돌며 만나는 모든 세포에게 “신분증(MHC class I 분자)을 보여주시오!”라고 요구합니다. 정상적인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이 신분증을 당당하게 제시합니다. NK세포는 이 신분증을 인식하는 ‘억제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 신분증이 확인되면 “통과. 아군이다.”라고 판단하고 공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바이러스 감염 세포나 암세포들은 T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이 MHC 신분증을 세포 표면에서 숨기거나 없애버립니다. NK세포는 바로 이 ‘신분증이 없는 수상한 녀석’을 발견합니다. 억제 신호가 들어오지 않으면, NK세포의 공격 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2. 스트레스 신호를 감지하라: 활성 수용체
단순히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NK세포는 동시에 ‘활성 수용체’라는 또 다른 센서를 가지고, 세포들이 보내는 ‘스트레스 신호’를 감지합니다.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암세포로 변하는 등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평소에는 없던 이상한 단백질들을 세포 표면에 드러냅니다. NK세포의 활성 수용체는 바로 이 스트레스 신호 분자와 결합하여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결론적으로 NK세포는 최종 공격 명령을 내리기 전에, ‘공격 중단!’ 신호(억제 수용체)와 ‘공격 개시!’ 신호(활성 수용체)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억제 신호는 약하고 활성 신호가 강할 때, 비로소 암살을 개시하는 매우 지능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입니다.
암살자의 무기: 세포에 구멍을 내고 자살을 유도하다
일단 공격을 결정한 NK세포는 목표물에 조용히 다가가 두 가지 강력한 무기가 담긴 ‘과립’을 주입합니다.
- 퍼포린 (Perforin): 이름처럼 목표 세포의 세포막에 총을 쏘듯 수많은 ‘구멍(Pore)’을 뚫어버리는 단백질입니다.
- 그랜자임 (Granzyme): 퍼포린이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세포 안으로 침투하는 단백질 효소입니다. 이 효소는 세포의 자살 프로그램(아폽토시스)을 가동시키는 스위치를 눌러, 목표 세포가 스스로 파괴되도록 명령합니다.
이 방식은 주변 조직에 염증이나 손상을 일으키지 않고, 오직 목표물만 깔끔하게 제거하는 매우 효율적인 암살 방법입니다.
암 치료의 새로운 희망
이러한 NK세포의 강력한 항암 능력 때문에, 현대 의학에서는 환자의 NK세포를 체외에서 대량으로 증식시키거나, 암세포를 더 잘 공격하도록 유전적으로 강화하여 다시 주입하는 ‘NK세포 치료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고독한 암살자는 다른 어떤 선천면역세포보다도 암 정복의 희망을 품고 있는, 우리 몸의 가장 믿음직한 수호자 중 하나입니다.
4인의 용사, 선천면역세포 비교 정리
세포 이름 | 별명 / 비유 | 핵심 기능 | 주요 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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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세포 | 만능 야전 사령관, 청소부 | 포식, 조직 청소, 항원 제시 | 세균, 죽은 세포 |
호중구 | 최정예 돌격대, 자폭 부대 | 신속한 포식, 살균 물질 방출, NETosis | 세균, 진균 |
수지상세포 | 최고의 정보 분석가, 연결고리 | 적응면역 활성화 (항원 제시) | 모든 종류의 항원 |
자연살해세포(NK) | 고요한 암살자, 특수부대 | 비정상 세포(신분증 없는 세포) 제거 | 바이러스 감염 세포, 암세포 |
이처럼 우리 몸의 1차 방어선은 각기 다른 개성과 필살기를 가진 선천면역세포들의 완벽한 팀워크로 유지됩니다. 이들이 최전선에서 시간을 벌어주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기에, 우리 몸의 정예부대인 적응면역이 비로소 활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적응면역의 주역들, T세포와 B세포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