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면역학> I.1.1 면역학의 역사와 발전: 제너에서 현대 면역치료까지

<현대 면역학> I.1.1 면역학의 역사와 발전: 제너에서 현대 면역치료까지

인류의 이야기는 질병과의 싸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를 휩쓴 역병을 기록한 투키디데스는 “한 번 병을 앓고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면역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 중 하나로, 당시에는 그 원리를 알 수 없었지만, 경험으로 체득한 소중한 지혜였습니다. 이처럼 어렴풋한 관찰과 경험에서 시작된 지혜가 어떻게 정밀하고 강력한 과학, ‘면역학’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까요? 그 위대한 발견의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이번 장에서는 면역학의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건들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질병의 공포를 극복하고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탐구할 것입니다. 한 시골 의사의 대담한 실험에서부터 시작해,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직접 활용하는 최첨단 면역치료에 이르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연대기를 시작합니다.

관찰의 시대: 면역학의 문을 연 선구자들

면역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은 첨단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삶과 질병을 향한 깊은 ‘관찰’에서 그 싹을 틔웠습니다. 한번 앓고 나면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고대의 지혜는, 몇몇 선구자들의 용기 있는 실천과 집요한 탐구를 통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고대의 지혜, 인두법(Variolation)의 유산

에드워드 제너의 종두법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류는 나름의 방식으로 면역의 원리를 어렴풋이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두법(Variolation)입니다. 이는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소량 채취하여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 상처를 내어 의도적으로 감염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실제 천연두균을 사용하기에 매우 위험했지만, 자연적으로 감염되는 것보다는 증상이 가볍고 치사율이 낮다는 경험적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방법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온 민간요법이었습니다. 18세기 초, 오스만 제국 주재 영국 대사의 부인이었던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터규(Lady Mary Wortley Montagu)는 이 인두법을 직접 목격하고 자신의 자녀에게 시술하여 그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인두법의 효과를 적극적으로 알렸고, 이는 유럽과 미국에까지 전파되며 천연두의 공포를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인두법은 비록 위험성을 내포했지만, ‘약한 질병을 통해 강한 질병을 예방한다’는 면역의 핵심 개념을 인류가 최초로 실천에 옮긴 사례이자, 훗날 제너의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에드워드 제너: 인류 최초의 백신, 종두법

면역학의 역사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한 시골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의 집요한 관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천연두(두창)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들이 소의 가벼운 질병인 ‘우두’에 걸리고 나면, 치명적인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1796년, 그는 역사적인 실험을 감행합니다. 우두를 앓는 여성의 고름을 채취하여 8살 소년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한 것입니다. 소년은 가벼운 증상을 앓고 회복했고, 몇 주 뒤 제너는 소년에게 실제 천연두균을 주입했습니다. 제너의 예상대로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인두법을 대체할 훨씬 안전하고 과학적인 방법, 즉 인류가 질병에 맞서 ‘예방’이라는 무기를 손에 넣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한 ‘백신(vaccine)’이라는 용어가 이때 탄생했습니다.

루이 파스퇴르: 면역학의 아버지

제너가 문을 열었다면, 그 길을 넓히고 체계화한 인물은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입니다. 그는 제너의 방식을 넘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 자체의 독성을 인위적으로 약화시켜 백신을 만들 수 있다는 ‘백신의 일반 원리’를 확립했습니다.

닭 콜레라균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약화된 균주가 질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는 탄저병 백신을 개발했고, 1885년에는 광견병에 걸린 소년에게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주사하여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병원체를 직접 몸에 주입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시대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공로로 파스퇴르는 ‘근대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됩니다.

발견의 시대: 면역의 두 얼굴, 세포와 항체

19세기 후반, 과학자들은 ‘면역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면역학의 역사를 이끈 두 가지 거대한 흐름이 등장합니다.

세포성 면역 vs 체액성 면역

러시아의 생물학자 엘리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는 불가사리 유생에 장미 가시를 찔러 넣는 독특한 실험을 통해, 정체불명의 세포들이 가시 주위로 모여들어 잡아먹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 세포를 ‘먹는 세포’라는 뜻의 식세포(Phagocyte)라 명명하고, 면역의 핵심이 바로 이 ‘세포’들의 작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포성 면역 이론의 시작입니다.

반면, 독일의 에밀 폰 베링(Emil von Behring)과 일본의 기타사토 시바사부로(Kitasato Shibasaburō)는 디프테리아균에 감염되었다가 회복한 동물의 혈청(혈액 속 액체 성분)에 독소를 중화시키는 물질, 즉 항독소(Antitoxin)가 존재함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면역의 주체가 혈액 속에 떠다니는 특정 분자라고 생각했으며, 이는 체액성 면역 이론으로 발전했습니다.

한동안 계속된 이 두 이론의 대립은 결국 ‘둘 다 옳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세포와 항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복합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1908년, 메치니코프와 파울 에를리히(항체 이론을 발전시킨 학자)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면역학은 비로소 독립된 학문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20세기: 면역학의 황금기와 현대적 도약

19세기 말, 면역학이 ‘세포냐, 항체냐’는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학문의 여명을 열었다면, 20세기는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아 나선 폭발적인 성장의 시대였습니다. 인류는 비로소 우리 몸의 면역계라는 정교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을 하나씩 호명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와 소통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면역학의 발전은 단순히 하나의 학문 분야 성장에 그치지 않고, 감염병, 장기이식, 암, 유전학 등 현대 의학의 모든 분야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장에서는 현미경 속 작은 세포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질병 진단과 치료의 개념을 바꾼 ‘마법의 탄환’을 만들어내고, 인류에게 큰 상처를 남긴 질병을 통해 면역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 20세기 면역학의 역동적인 순간들을 깊이 있게 탐험해 보겠습니다.

면역의 양대 산맥, T세포와 B세포의 등장

20세기 중반까지도 과학자들은 메치니코프의 ‘세포성 면역’과 에를리히의 ‘체액성 면역’이 각각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 비밀을 푼 열쇠는 바로 림프구(Lymphocyte)라는 세포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림프구가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두 개의 주요 가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B 림프구 (B cell): 골수(Bone marrow)에서 성숙하는 이 세포들은 ‘체액성 면역’의 주역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적(항원)을 만나면 항체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 즉 형질세포(Plasma cell)로 변신합니다. 이들이 만든 항체는 혈액과 체액을 떠다니며 침입자를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T 림프구 (T cell): 가슴샘(Thymus)에서 성숙하는 이 세포들은 ‘세포성 면역’의 총사령관이자 직접 공격을 수행하는 병사였습니다. T세포는 다시 여러 종류로 나뉘어, 다른 면역세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도움 T세포(Helper T cell),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세포독성 T세포(Cytotoxic T cell) 등으로 분화하여 작전을 수행합니다.

이 발견은 19세기부터 이어진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면역 반응은 세포와 항체 중 하나의 승리가 아니라, T세포와 B세포라는 두 주역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만들어내는 한 편의 교향곡이었던 것입니다.

단일클론항체, ‘마법의 탄환’의 탄생

항체가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능력은 질병 진단과 치료에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만약 특정 암세포에만 결합하는 항체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면?’이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초 파울 에를리히가 말한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의 개념입니다.

이 꿈은 1975년, 세사르 밀스테인(César Milstein)과 조르주 쾰러(Georges Köhler)에 의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체를 무한정 만들어내는 B세포(골수종 세포)와, 원하는 특정 항체를 만드는 B세포를 융합하여 ‘하이브리도마(Hybridoma)’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 세포는 영원히 증식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단 한 종류의 항체, 즉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만을 뿜어냈습니다.

이 기술의 발명은 20세기 면역학이 낳은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단일클론항체는 임신 진단 키트에서부터 시작해, 특정 암세포를 찾아내는 영상 진단, 그리고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나 항암제(리툭시맙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 의약학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 면역치료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기술에 빚지고 있습니다.

AIDS의 충격과 면역학의 교훈

1980년대, 인류는 새로운 역병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바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입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각종 감염에 쓰러져 나가는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이며, 이 바이러스가 우리 면역계의 핵심 지휘관인 ‘도움 T세포(CD4+ T cell)’를 집중적으로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AIDS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면역계의 중요성을 온 세상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움 T세포라는 총사령관을 잃은 면역계가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 질병의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면역세포들 간의 상호작용과 사이토카인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세기 면역학의 핵심 이정표

시기주요 발견 및 발전핵심 내용 및 의의
1950~60년대B세포와 T세포의 발견림프구가 기능적으로 다른 두 집단으로 나뉜다는 것을 규명. 세포성 면역과 체액성 면역의 실체를 밝히고, 현대 면역학의 기본 골격을 완성함.
1970년대단일클론항체 기술 개발원하는 항체를 무한정 생산하는 기술. 질병의 정밀 진단과 표적 치료의 시대를 연 ‘마법의 탄환’.
1980년대T세포 수용체(TCR) 유전자 규명T세포가 어떻게 수많은 종류의 항원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유전적 비밀(유전자 재조합)을 풀어냄. (스스무 도네가와, 1987년 노벨상)
1980년대HIV/AIDS 원인 규명HIV가 도움 T세포를 파괴하여 면역체계를 붕괴시킨다는 것을 발견. 면역계의 중요성과 작동 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

이처럼 20세기 면역학은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분자 및 세포 수준으로 끌어올린 혁명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이때 쌓아 올린 지식들은 21세기 면역항암치료와 같은 첨단 의학이 탄생할 수 있는 단단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위대한 발견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날 면역계를 직접 조절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시대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대: 면역치료, 질병 정복의 새로운 패러다임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면역학의 역사는 질병을 이해하는 학문을 넘어, 질병을 적극적으로 정복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면역치료(Immunotherapy)라는 혁신적인 개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의 치료법이 외부에서 약물이나 방사선으로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거나(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단순히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면역억제제) 방식에 머물렀다면, 현대의 면역치료는 우리 몸 안에 잠재된 거인, 즉 면역계 자체를 조절하고 강화하여 질병과 싸우게 만드는 보다 근본적이고 능동적인 접근법입니다.

이는 치료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었습니다. 더 이상 암세포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와 우리 면역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암 치료 분야에서 면역치료는 1, 2세대 치료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습니다.

면역항암치료: 암 정복의 새로운 희망

암세포는 우리 몸의 정상 세포에서 비롯된 ‘반란군’입니다. 초기에는 면역계가 이들을 효과적으로 찾아내 제거하지만, 암세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역계의 감시망을 피하는 교묘한 ‘위장술’과 ‘방어막’을 발달시킵니다. 면역항암치료는 바로 이 암세포의 회피 전략을 무력화하고, 우리 면역계가 본연의 임무를 다시 수행하도록 돕는 최첨단 기술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 면역계의 ‘브레이크’를 풀어라!

우리 몸의 T세포(면역 반응의 핵심 사령관)는 과도한 공격으로 정상 세포가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는 ‘브레이크’ 장치, 즉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면역관문으로는 PD-1, CTLA-4 등이 있습니다.

영리한 암세포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듭니다. 암세포는 자신의 표면에 면역관문 수용체에 결합하는 단백질(PD-L1 등)을 만들어, 자신을 공격하러 온 T세포의 브레이크를 강제로 밟아버립니다. T세포는 암세포를 눈앞에 두고도 공격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는 바로 이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는 항체 의약품입니다. 암세포가 T세포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T세포가 다시 활성화되어 암세포를 강력하게 공격하도록 만듭니다. 이 혁신적인 발견으로 제임스 앨리슨과 타스크 혼조는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CAR-T 세포 치료: 살아있는 약, 유전공학 병사의 탄생

면역치료의 또 다른 정점은 CAR-T(Chimeric Antigen Receptor T-cell) 치료입니다. 이는 환자 본인의 면역세포를 이용하는 궁극의 맞춤형 치료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마치 SF 영화와 같습니다.

  1. 추출: 먼저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분리하여 추출합니다.
  2. 개조: 실험실에서 바이러스 벡터 등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T세포의 유전자를 재설계합니다. 이때 T세포가 특정 암세포 표면의 항원(예: 백혈병 세포의 CD19)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결합할 수 있도록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를 만들어 T세포 표면에 장착시킵니다.
  3. 증식: 암세포를 찾아내는 특수 레이더를 장착한 T세포를 수억, 수십억 개로 대량 증식시킵니다.
  4. 주입: 이렇게 탄생한 ‘유전공학 정예부대’를 다시 환자의 몸에 주입합니다.

환자의 몸으로 돌아온 CAR-T 세포는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혈액과 조직을 순찰하며 숨어있는 암세포를 찾아내 강력하게 파괴합니다. 한번 주입된 후에도 체내에서 살아남아 증식하며 지속적으로 암을 감시하므로 ‘살아있는 약(Living Drug)’이라고도 불립니다. 특히 기존 치료법이 듣지 않던 일부 혈액암 환자들에게 극적인 치료 효과를 보여주며 난치병 정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면역치료가 가져온 혁신

면역치료가 ‘혁명’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치료 옵션이 하나 추가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치료법은 기존 치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장점을 가집니다.

  • 특이성과 기억: 화학요법이 ‘융단폭격’처럼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암세포와 정상 세포 모두)를 공격하는 반면, 면역치료는 암세포를 표적으로 삼는 ‘정밀타격’에 가깝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면역계의 ‘기억’ 능력입니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면역계가 암세포를 기억하고 있다가 재발 시 즉각 대응할 수 있어, 장기 생존 및 완치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 광범위한 적용 가능성: 특정 유전자 변이가 아닌 ‘면역 회피’라는 공통된 기전을 표적으로 하므로, 이론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암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폐암, 흑색종, 신장암 등 여러 암종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습니다.

도전과 미래: 아직 가야 할 길

물론 면역치료가 만능은 아닙니다. 일부 환자에게는 반응이 없거나, 강력하게 활성화된 면역계가 역으로 정상 조직을 공격하는 심각한 부작용(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수억 원에 달하는 높은 비용은 치료 접근성을 막는 큰 장벽입니다.

따라서 현대 면역학은 ▲어떤 환자에게 면역치료가 효과가 있을지 예측하는 바이오마커 개발,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른 치료법과의 병용 요법 연구, ▲CAR-T의 다음 세대인 CAR-NK 등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세포 치료제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 시골 의사의 대담한 관찰에서 시작된 면역학의 역사는, 이제 우리 몸의 세포를 직접 지휘하여 난치병을 정복하는 경이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질병의 공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이 위대한 여정은, 앞으로도 생명의 가장 깊은 비밀을 풀고 더 건강한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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