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면역학> I.4.1 항원결정기(Epitope): 면역계가 조준하는 진짜 ‘표적지’와 항원의 조건

진짜 공격 목표, 항원결정기(Epitope)

우리 면역계가 항원을 인식할 때, 거대한 병원균이나 단백질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보고 공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적의 비행선 전체에 미사일을 쏘는 것이 아니라, 엔진이나 조종석과 같은 핵심 부위만을 정밀하게 노리는 것과 같습니다. 면역학에서, 이 진짜 공격 목표가 되는 항원의 특정 부위를 바로 항원결정기(Epitope) 또는 ‘에피토프’라고 부릅니다.1

항원결정기란 무엇인가? – ‘면역계의 표적지’

거대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전체를 ‘항원’이라고 한다면, 그 표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구조물 중 항체나 T세포 수용체가 실제로 자물쇠와 열쇠처럼 딱 맞게 결합하는 특정 3차원 구조나 펩타이드 조각이 바로 ‘면역계의 표적지’, 즉 항원결정기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항원 분자 위에는 여러 개의, 그리고 각기 다른 종류의 항원결정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2

이 덕분에 우리 몸은 단 하나의 적에 대해서도 다양한 종류의 B세포와 T세포를 동원하여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퍼부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의 단백질 A라는 항원결정기를 인식하는 항체와 단백질 B라는 항원결정기를 인식하는 항체가 동시에 생산되어 공격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클론 항체 반응(Polyclonal antibody response)’이라고 하며, 우리 면역계가 효과적으로 적을 제거하는 비결 중 하나입니다.

두 종류의 표적지: B세포와 T세포의 다른 눈

적응면역의 두 주인공인 B세포와 T세포는 같은 항원을 공격하더라도,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항원결정기를 인식합니다. 이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적응면역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입니다.

B세포 항원결정기 (B-cell Epitope): 있는 그대로의 적을 본다

B세포(그리고 B세포가 분화하여 만드는 항체)는 항원의 표면에 ‘있는 그대로’ 노출된 3차원 입체 구조를 직접 인식합니다. 이는 마치 적의 갑옷 표면에 있는 독특한 문양이나 장식물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과 같습니다.3 따라서 B세포가 인식하는 항원결정기는 단백질뿐만 아니라, 세균의 세포벽을 이루는 다당류(탄수화물)나 지질 등 다양한 형태의 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항원의 표면에 돌출되어 있어 접근이 용이한 부위들입니다.

T세포 항원결정기 (T-cell Epitope): 가공된 정보를 브리핑 받는다

반면에 T세포는 B세포처럼 항원을 직접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대신, T세포는 ‘항원제시세포(APC)’라는 아군으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방식으로 적의 정보를 파악합니다.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와 같은 항원제시세포가 먼저 항원을 삼킨 뒤, 세포 내부에서 잘게 ‘분해하고 가공’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긴 10개 안팎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짧은 펩타이드 조각(항원결정기)을 ‘MHC’라는 특별한 ‘접시’ 위에 올려서 T세포에게 보여줍니다.4

T세포는 오직 이 MHC 접시 위에 놓인 펩타이드 조각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첩보 요원(T세포)이 적의 모습을 직접 보는 대신, 아군 분석관(APC)이 적의 신분증(항원)을 빼앗아 잘게 자른 뒤, 그 핵심 조각(항원결정기)을 보고서(MHC)에 붙여 브리핑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T세포의 항원결정기는 대부분 단백질에서 유래한 짧은 선형 펩타이드가 됩니다.

B세포와 T세포가 인식하는 항원결정기 비교

구분B세포 항원결정기T세포 항원결정기
인식 분자단백질, 다당류, 지질 등 다양주로 단백질의 펩타이드 조각
구조3차원 입체 구조 (Conformational)선형 펩타이드 서열 (Linear)
위치항원 표면에 노출된 부위항원 내부를 포함한 모든 부위
인식 조건항원 그 자체를 직접 인식MHC 분자에 의해 제시되어야만 인식 가능

참고 자료

  1. Sela, M. (1969). Antigenicity: some molecular aspects. Science, 166(3911), 1365–1374. https://doi.org/10.1126/science.166.3911.1365
  2. Van Regenmortel, M. H. (1989). The concept and operational definition of protein epitope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B, Biological Sciences, 323(1217), 451–466. https://doi.org/10.1098/rstb.1989.0028
  3. Barclay, A. N. (2003). Membrane proteins with immunoglobulin-like domains—a master superfamily of interaction molecules. Seminars in Immunology, 15(4), 215–223. https://doi.org/10.1016/S1044-5323(03)00047-2
  4. Neefjes, J., Jongsma, M. L., Paul, P., & Lemeer, S. (2011). Towards a systems understanding of MHC class I and MHC class II antigen presentation. Nature Reviews Immunology, 11(12), 823–836. https://doi.org/10.1038/nri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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