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계의 위대한 발명: PAMP와 PRR
선천면역세포가 사전 학습 없이도 침입한 적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비밀은, ‘개인’이 아닌 ‘그룹’의 특징을 인식하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 면역계가 수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 찾아낸 위대한 해법으로, ‘병원체 관련 분자 패턴(PAMP)’과 이를 감지하는 ‘패턴인식수용체(PRR)’라는 두 파트너의 완벽한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미생물의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증 판독기‘라는 비유를 사용해 보겠습니다.
미생물의 주민등록증, PAMPs (병원체 관련 분자 패턴)
PAMPs(Pathogen-Associated Molecular Patterns)는 말 그대로 병원체, 즉 미생물 그룹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분자 패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미생물의 주민등록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주민등록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절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1
- 우리 몸에는 절대로 없다: PAMPs는 인간과 같은 고등생물의 세포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미생물만이 가지는 구조입니다. 이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됩니다.
- 미생물에게는 필수적이다: 이 분자 패턴들은 미생물이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필수적인 구조물(예: 세포벽, 편모)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미생물은 면역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이 ‘주민등록증’을 마음대로 버리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우리 면역계는 수많은 미생물의 종류를 일일이 외울 필요 없이,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주민등록증’만 확인하면 됩니다. 주요 PAMPs의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질다당류 (Lipopolysaccharide, LPS): 그람 음성균의 바깥 세포막을 구성하는 핵심 성분.
- 펩티도글리칸 (Peptidoglycan): 대부분의 세균(특히 그람 양성균)이 가진 세포벽의 주성분.
- 플라젤린 (Flagellin): 세균이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편모를 구성하는 단백질.
- 이중 가닥 RNA (double-stranded RNA, dsRNA): 많은 바이러스가 증식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형태의 유전 물질. 인간 세포의 RNA는 대부분 단일 가닥입니다.
이처럼 PAMPs는 미생물이 진화하더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보존된’ 패턴이기 때문에, 우리 면역계가 수억 년 동안 안정적으로 적을 인식하는 표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증 판독기, PRRs (패턴인식수용체)
PAMP라는 훌륭한 표적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지할 ‘센서’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바로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면역세포 표면이나 내부에 장착된 패턴인식수용체(Pattern Recognition Receptors, PRR)입니다. 이름 그대로, PAMP라는 특정 ‘패턴’을 ‘인식’하는 ‘수용체’입니다.2
이 패턴인식수용체를 PAMPs라는 ‘미생물의 주민등록증’을 읽는 전용 ‘판독기’ 또는 ‘스캐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와 같은 선천면역세포들은 다양한 종류의 패턴인식수용체를 가지고, 마치 공항의 보안 검색대처럼 세포 안팎을 끊임없이 감시합니다. 그러다 자신의 스캐너에 맞는 ‘주민등록증(PAMP)’이 감지되는 순간, 즉시 세포 내부에 “적 발견! 비상사태!”라는 강력한 경보 신호를 보냅니다. 이 신호는 곧바로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다른 면역세포들을 불러 모으는 일련의 방어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이 정교한 패턴인식수용체 덕분에 우리 몸은 침입 초기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PAMP와 PRR의 관계 요약
| 항목 | PAMP (병원체 관련 분자 패턴) | PRR (패턴인식수용체) |
|---|---|---|
| 비유 | 미생물의 주민등록증 | 주민등록증 판독기 / 스캐너 |
| 소유자 | 병원체 (세균, 바이러스 등) | 숙주 면역세포 (대식세포 등) |
| 역할 | ‘비자아(non-self)’임을 나타내는 분자 표식 | PAMP를 인식하여 면역 반응 개시 |
| 대표 예시 | LPS, 펩티도글리칸, dsRNA | TLRs, NLRs, RLRs |
참고 자료
- Mogensen, T. H. (2009). Pathogen recognition and inflammatory signaling in innate immune defenses. Clinical Microbiology Reviews, 22(2), 240–273. https://doi.org/10.1128/CMR.00046-08
- Takeuchi, O., & Akira, S. (2010). Pattern recognition receptors and inflammation. Cell, 140(6), 805–820. https://doi.org/10.1016/j.cell.2010.0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