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면역학> I.3.1 면역계의 성벽과 해자: 우리 몸의 1차 방어선, 피부와 점막의 놀라운 비밀

우리 몸의 만리장성: 물리적 장벽

우리 면역계의 성벽과 해자 중 가장 먼저 적과 마주하는 것은 바로 물리적인 ‘성벽’입니다. 이 성벽은 병원균이 우리 몸의 영토로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어선입니다. 우리 몸은 외부 세계와 직접 맞닿는 피부와, 몸속으로 연결되는 내부 통로인 점막이라는 두 종류의 견고한 성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장벽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면역 시스템의 첫 단추를 꿰는 것과 같습니다.

최외곽 방어벽, 피부 (Skin)

피부는 외부 세계의 온갖 위협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가장 크고, 가장 견고한 최외곽 성벽입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성인 기준 약 2제곱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장기는, 단순히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병원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살아있는 방어 구조물입니다.1

각질층, 견고한 벽돌 구조

피부라는 성벽의 가장 바깥 부분은 ‘각질층(Stratum corneum)’이라고 불립니다. 이 각질층은 ‘케라틴(Keratin)’이라는 단단한 단백질로 가득 채워진 죽은 세포(각질세포)들이 마치 벽돌처럼 15~20겹으로 촘촘하게 쌓여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벽돌들 사이의 틈은 세라마이드를 포함한 지질 성분이 시멘트처럼 메우고 있어, 물 분자조차 쉽게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견고한 방수벽을 형성합니다.2

이 ‘벽돌과 시멘트’ 구조 덕분에 우리 피부는 일상적인 마찰이나 가벼운 상처에도 쉽게 뚫리지 않으며, 대부분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이 단단한 장벽 앞에서 침투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면역계의 성벽과 해자 시스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방어 원리입니다.

끊임없는 교체, 탈락(Desquamation)

피부라는 성벽은 한 번 지어지고 끝나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성벽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보수하고 청소한다는 점입니다. 피부의 가장 바깥층에 있는 낡은 각질세포들은 약 4주를 주기로 계속해서 떨어져 나갑니다. 이를 ‘탈락(Desquamation)’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낡은 세포를 버리는 것을 넘어, 매우 영리한 방어 전략이기도 합니다. 만약 병원균이 피부 표면에 간신히 달라붙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들이 자리를 잡고 번식하기 전에 그들이 붙어있는 ‘땅’ 자체인 각질세포가 떨어져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성벽에 달라붙은 적군을, 그들이 붙잡고 있는 벽돌을 떼어내 함께 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적인 자가 청소 메커니즘입니다.

내부 통로의 수문장, 점막 (Mucous Membranes)

피부라는 견고한 성벽도 우리 몸의 모든 곳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숨을 쉬고, 음식을 먹어야 하기에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호흡기, 소화기, 비뇨생식기 등)가 존재합니다. 이 통로들은 병원균에게는 성벽의 ‘문’과 같은 취약 지점입니다. 우리 몸은 이 중요한 문들을 지키기 위해 ‘점막’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영리한 내부 방어벽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끈끈이 덫, 점액(Mucus)

점막이라는 방어벽의 가장 큰 특징은 이름 그대로 ‘점액(Mucus)’을 분비한다는 것입니다. ‘뮤신(Mucin)’이라는 당단백질이 주성분인 이 끈적끈적한 점액은 점막 표면을 항상 촉촉하게 덮어, 마치 파리가 끈끈이 종이에 달라붙듯 공기나 음식물과 함께 들어온 세균이나 먼지를 포획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끈끈이 덫’ 역할을 합니다.3

자동 청소 시스템, 섬모(Cilia)

특히 호흡기 점막에는 이 끈끈이 덫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자동 청소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바로 점막 세포 표면에 나 있는 수백만 개의 미세한 털, ‘섬모(Cilia)’입니다. 이 섬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한쪽 방향(목구멍 쪽)으로 물결치듯 움직입니다. 이 움직임은 점액에 붙잡힌 병원균과 이물질들을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목구멍 쪽으로 쓸어 올려 몸 밖으로 밀어냅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가래를 삼키거나 뱉는 것, 그리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기침이나 재채기는 모두 이 놀라운 섬모 운동 시스템이 우리 몸을 청소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참고 자료

  1. Proksch, E., Brandner, J. M., & Jensen, J. M. (2008). The skin: an indispensable barrier. Experimental Dermatology, 17(12), 1063–1072. https://doi.org/10.1111/j.1600-0625.2008.00786.x
  2. Elias, P. M. (2005). Stratum corneum defensive functions: an integrated view.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 125(2), 183–200. https://doi.org/10.1111/j.0022-202X.2005.23668.x
  3. Mestecky, J., & McGhee, J. R. (2009). Mucosal Immunology (4th ed.). Academic Press. https://www.sciencedirect.com/book/9780123725801/mucosal-immu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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