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면역학> I.2.5 면역계 전략 기지: 2차 림프기관 (림프절, 비장, MALT)의 모든 것

혈액의 수호자, 비장 (Spleen)

림프절이 조직에서 흘러나온 림프액을 감시하는 ‘지역 방어 사령부’라면, 비장(지라)은 우리 몸의 ‘중앙 군사령부’와 같습니다. 복부 왼쪽 위에 자리 잡은, 주먹만 한 크기의 비장은 인체에서 가장 큰 단일 림프기관입니다. 비장의 가장 큰 특징은 림프절과 달리 림프액이 아닌, 우리 몸의 혈액 전체를 직접 필터링한다는 점입니다.1 즉,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전신 감염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이자, 가장 중요한 면역계 전략 기지입니다.

만약 우리 몸을 하나의 거대한 도시라고 한다면, 비장은 도시의 모든 물류가 모이는 중앙역을 지키며, 그곳을 통과하는 모든 화물(혈액)을 검사하여 위험물을 제거하는 ‘중앙 특수경비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중요한 면역계 전략 기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비장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적색 수질과 백색 수질: 두 얼굴의 기관

비장을 잘라 단면을 보면, 붉은색을 띠는 ‘적색 수질(Red Pulp)’과 그 안에 점처럼 박혀있는 하얀색 ‘백색 수질(White Pulp)’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두 구역은 이름과 색깔만큼이나 그 기능이 완전히 다릅니다. 비장은 이 두 얼굴을 통해 혈액 관리와 면역 반응이라는 두 가지 핵심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놀라운 기관입니다.

첫 번째 얼굴: 피를 정화하는 거대한 필터, 적색 수질 (Red Pulp)

비장 부피의 대부분(약 75%)을 차지하는 적색 수질은, 이름 그대로 혈액으로 가득 찬 붉은 조직입니다. 이곳의 주된 임무는 면역 반응보다는 혈액의 ‘품질 관리’에 가깝습니다.

  • 노쇠한 혈구의 무덤: 적색 수질에는 수많은 대식세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약 120일의 수명을 다하고 기능이 떨어진 늙은 적혈구나 손상된 혈소판을 정확히 인식하여 제거합니다. 이 과정에서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의 철(iron) 성분은 회수하여 골수에서 새로운 적혈구를 만드는 데 재활용하도록 보내는 ‘최고의 재활용 센터’ 역할도 수행합니다.2
  • 혈액 저장고: 적색 수질는 혈소판을 비롯한 상당량의 혈액을 저장해 두었다가, 출혈 등 비상시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예비 저장고의 기능도 합니다.

두 번째 얼굴: 혈액 감염의 최전선, 백색 수질 (White Pulp)

적색 수질 속에 섬처럼 떠 있는 백색 수질은, 비장이 면역계 전략 기지로서 기능하는 핵심적인 장소입니다. 그 구조는 림프절과 매우 유사하여, T세포가 모여있는 ‘중심동맥주위 림프초(PALS)’와 B세포가 모여있는 ‘림프 소절(Follicle)’로 구획이 나뉘어 있습니다.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던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비장을 통과하면, 이들은 백색 수질로 유인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대기하던 수지상세포와 T, B세포에 의해 포착되어 강력한 적응 면역 반응이 시작됩니다. 즉, 림프절이 특정 ‘지역’의 감염을 담당한다면, 백색 수질은 ‘전신’으로 퍼진 혈액 감염에 대응하는, 우리 몸 방어 시스템의 중앙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장은 우리 몸의 중요한 면역계 전략 기지 중 하나입니다.

비장의 두 얼굴, 적색 수질과 백색 수질 비교

구분적색 수질 (Red Pulp)백색 수질 (White Pulp)
주요 기능혈액 필터링 (노쇠한 적혈구 제거), 혈액 저장혈액 매개 병원체에 대한 면역 반응 개시
주요 구성 세포적혈구, 대식세포, 혈소판T세포, B세포, 수지상세포
역할 비유혈액 정화조, 재활용 센터, 예비 혈액 창고혈액 감시 사령부, 면역 반응 전쟁터

림프절과의 차이점: 왜 비장이 필요한가?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몸 곳곳에 림프절이라는 훌륭한 감시 초소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왜 비장이라는 거대한 기관이 또 필요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면역계 전략 기지가 감시하는 ‘영역’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림프절은 피부나 조직에서 나온 ‘림프액’이라는 개울물을 감시하는 지역 경찰서와 같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은 대부분 이 지역 경찰서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범인(병원균)이 이 방어선을 뚫고 ‘혈액’이라는 국가 대동맥, 즉 고속도로에 진입해버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때는 지역 경찰서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혈액이라는 고속도로를 직접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앙 사령부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하는 유일한 기관이 바로 비장입니다.3

이 차이는 패혈증(Sepsis)과 같이 혈액을 통해 감염이 전신으로 퍼지는 위급 상황에서 비장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패혈증은 세균이 혈류에 침투하여 통제 불가능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상태입니다. 이때 우리 몸은 비장이라는 중앙 면역계 전략 기지를 총동원하여 혈액 속 세균과 필사적인 전투를 벌입니다. 만약 비장이 없다면, 혈액을 타고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세균에 대한 방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사고나 질병으로 비장을 절제한 사람들은 특정 세균(특히 폐렴구균과 같은 피막을 가진 세균)에 의한 패혈증에 매우 취약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4 이는 비장이 결코 림프절의 확장판이 아닌, 혈액 감염 방어라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 임무를 가진 필수적인 면역계 전략 기지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림프절과 비장: 감시 시스템의 결정적 차이

구분림프절 (Lymph Node)비장 (Spleen)
감시 대상림프액 (Lymph)혈액 (Blood)
주된 역할조직에서 시작된 국소 감염 대응혈액을 통해 퍼지는 전신 감염 대응
역할 비유지역 경찰서, 국지전 사령부중앙 군사령부, 전면전 사령부
주요 위협 상황피부 상처, 조직 감염패혈증 (Sepsis), 혈액 매개 감염

참고 자료

  1. Mebius, R. E., & Kraal, G. (2005). Structure and function of the spleen. Nature Reviews Immunology, 5(8), 606–616. https://doi.org/10.1038/nri1669
  2. Pivkin, I. V., Peng, Z., Karniadakis, G. E., & Buffet, P. A. (2016). Biomechanics of red blood cells in human spleen and consequences for physiology and diseas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3(28), 7804–7809. https://doi.org/10.1073/pnas.1606751113
  3. Mebius, R. E., & Kraal, G. (2005). Structure and function of the spleen. Nature Reviews Immunology, 5(8), 606–616. https://doi.org/10.1038/nri1669
  4. Di Sabatino, A., Carsetti, R., & Corazza, G. R. (2011). Post-splenectomy protecting against infections. Haematologica, 96(3), 365–372. https://doi.org/10.3324/haematol.2010.038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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