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면역학> I.1.2 면역계의 핵심 개념: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의 구분, 특이성, 기억

면역계의 핵심 개념 내용 포스팅

<현대 면역학> I.1.2 면역계의 핵심 개념: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의 구분, 특이성, 기억

지난 시간에는 제너의 종두법에서부터 최첨단 면역항암치료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명을 지켜온 면역학의 위대한 역사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정교한 면역 시스템은 과연 어떤 근본적인 원리 위에서 작동하는 것일까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군대의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군대가 따르는 ‘교리’와 ‘전략’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우리 몸의 군대, 면역계가 따르는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원칙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면역계의 핵심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배울 모든 면역학적 현상의 기초를 다지는 일입니다. 왜 백신을 맞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지, 왜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지, 그 모든 질문의 답이 바로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면역계의 가장 위대한 지능: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의 구분

우리 몸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국가와 같습니다. 이 국가의 국경을 지키고 내부의 치안을 유지하는 군대, 즉 면역계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첫 번째 임무는 바로 ‘국민(자기, Self)’과 ‘외부 침입자 또는 반란군(비자기, Non-self)’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와 비자기의 구분이라는, 면역계의 핵심 개념 중 가장 위대하고도 본질적인 원리입니다.

이 피아식별 능력 없이는 면역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식별 능력이 너무 무디면 외부의 적을 알아보지 못해 국가는 병들 것이고, 반대로 너무 예민하면 애꿎은 자국민을 공격하여 내전 상태(자가면역질환)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면역계는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 것일까요?

모든 세포의 신분증: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

면역세포가 순찰을 돌며 모든 세포에게 “신분증 보여주세요”라고 검문하는 것과 같이,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세포는 표면에 ‘주조직적합성복합체(MHC, 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라는 분자 신분증을 제시합니다. 이 MHC는 사람마다 고유한 형태를 가져 ‘세포의 지문’이라고도 불리며, 두 가지 주요 형태로 나뉘어 각기 다른 정보를 보고합니다.

MHC class I: “제 내부 상태는 이렇습니다”

MHC class I은 핵을 가진 거의 모든 정상 세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신분증입니다. 이는 세포의 ‘내부 상태 보고 창’과 같습니다. 세포는 자신이 내부에서 만들고 있는 단백질 조각들을 끊임없이 이 MHC class I에 끼워 바깥으로 보여줍니다. 평상시에는 자신의 정상적인 단백질 조각을 보여주므로, 순찰 중인 면역세포(특히 세포독성 T세포)는 이를 보고 ‘음, 정상이군’하며 지나칩니다.

하지만 만약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암세포로 변하면, 그 세포는 바이러스 단백질이나 암 단백질 같은 비정상적인 조각을 MHC class I에 끼워 전시하게 됩니다. 이는 “나 감염됐어요! 문제가 생겼으니 나를 제거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구조 신호와 같습니다. 면역세포는 이 비정상적인 신호를 즉시 감지하고 해당 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함으로써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막습니다.

MHC class II: “제가 이런 침입자를 잡았습니다”

MHC class II는 대식세포, 수지상세포와 같은 전문적인 ‘항원 제시 세포(APC)’들만 가진 특수한 신분증입니다. 이는 ‘현상수배범 전단지’와 같습니다. 이 전문 면역세포들은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 같은 적들을 직접 잡아먹어 분해한 뒤, 그 조각을 MHC class II에 끼워 다른 면역세포들에게 보여줍니다. 특히 면역 반응의 총사령관인 ‘도움 T세포’에게 이 전단지를 보여주며 “이런 놈이 쳐들어왔으니, 전군에 경계령을 내려주십시오!”라고 보고하는 것입니다. 이 보고를 받은 도움 T세포는 비로소 전면적인 면역 반응을 지휘하기 시작합니다.

면역 관용: 아군을 공격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훈련소

모든 면역세포가 우리 몸의 MHC를 정확히 인지하고, 자신의 단백질 조각(자기 항원)에는 반응하지 않는 것을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라고 합니다. 이 관용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T세포가 ‘흉선(가슴샘)’이라는 훈련소에서 받는 혹독한 ‘선택’ 과정을 통해 학습됩니다. 이 역시 면역계의 핵심 개념에 해당합니다.

  1. 긍정 선택 (Positive Selection): 먼저 훈련소에 입소한 T세포들은 우리 몸의 고유한 MHC 신분증 형식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지 시험받습니다. 신분증 자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T세포는 쓸모가 없으므로 탈락(세포 사멸)합니다.
  2. 부정 선택 (Negative Selection): 1차 시험을 통과한 T세포들은 다음으로 더 중요한 시험을 치릅니다. 흉선에서는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종류의 자기 단백질 조각을 MHC에 실어 보여주는데, 이때 T세포가 이 ‘자기 항원’에 강력하게 반응하면 ‘아군을 공격할 위험이 있는 배신자’로 간주되어 즉시 제거됩니다.

이 두 가지 혹독한 훈련 과정을 모두 통과한, 즉 ‘아군의 신분증은 잘 알아보되, 아군의 얼굴에는 반응하지 않는’ 정예 T세포만이 비로소 면역계의 일원으로 임무를 수행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 정교한 교육 시스템 덕분에 면역계는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용의 상실: 아군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 자가면역질환

만약 이 피아식별 시스템이나 면역 관용 훈련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를 ‘비자기’로 오인하는 T세포가 훈련소를 무사히 졸업하여 우리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멀쩡한 세포와 조직을 침입자로 착각하고 무차별 공격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류마티스 관절염, 루푸스, 제1형 당뇨병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비극적인 시작입니다.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는 능력, 면역계의 핵심 개념의 상실이 우리 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예시입니다.

정교한 타겟팅 시스템: 특이성(Specificty)

면역계의 핵심 개념 두 번째는 마치 고도의 정밀 유도 미사일처럼 작동하는 특이성(Specificity)입니다. 면역계는 적을 발견했을 때 주변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적의 가장 취약한 특정 부위만을 정확히 노리는 ‘맞춤형 무기’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홍역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체나 T세포는 비슷한 모양의 수두 바이러스나 전혀 다른 독감 바이러스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는 수많은 열쇠 꾸러미에서 오직 단 하나의 자물쇠에만 완벽하게 들어맞는 유일한 열쇠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놀라운 정밀함입니다.

무엇을 인식하는가?: 항원결정기(Epitope)라는 표적

그렇다면 면역세포는 거대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무엇을 보고 ‘적’이라고 인식하는 걸까요? 면역계는 병원체 전체를 통째로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병원체 표면에 있는 수많은 분자 구조 중 아주 작은 특정 부위, 즉 항원결정기(Epitope)라는 부분을 인식합니다. 마치 우리가 사람을 알아볼 때 얼굴 전체가 아닌 눈, 코, 입과 같은 특징적인 부분을 보고 구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세균에는 수십, 수백 개의 서로 다른 항원결정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면역계는 이 각각의 항원결정기에 대해 별개의 ‘전담팀’을 꾸려 대응합니다. 이처럼 표적을 매우 작고 구체적인 단위로 세분화하기 때문에 지극히 정교한 공격이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한가?: 클론 선택설과 유전자 재조합

우리 몸이 어떻게 수없이 많은 종류의 항원결정기에 각각 맞는 ‘열쇠(수용체)’를 미리 준비할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클론 선택설(Clonal Selection Theory)’‘유전자 재조합’에 있습니다.

  1. 엄청난 다양성의 사전 준비: 우리 몸의 B세포와 T세포는 만들어질 때부터 유전자 조각들을 무작위로 조합하는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거칩니다. 이 덕분에 각 세포는 저마다 다른, 수억에서 수십억 가지에 이르는 고유한 모양의 항원 수용체(BCR, TCR)를 가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열쇠’를 미리 만들어 놓는 셈입니다. 이들은 아직 적을 만나지 못한 ‘순진한(Naive)’ 상태로 몸 전체를 순찰합니다.
  2. 운명적인 만남과 선택: 병원체가 침입하여 그 항원결정기가 몸속을 떠다니다가, 수많은 림프구 중 우연히 자신의 모양과 딱 들어맞는 수용체를 가진 림프구와 마주칩니다. 이 운명적인 만남이 바로 ‘선택’의 순간입니다.
  3. 폭발적인 증식과 분화: 일단 선택된 림프구는 즉시 활성화되어 자신과 똑같은 세포를 미친 듯이 복제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클론 증식’이라고 합니다. 단 하나였던 정예 요원이 수일 내에 수십만, 수백만의 강력한 ‘클론 군단’으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똑같은 수용체를 가졌기에, 오직 처음 선택을 유발했던 그 항원결정기만을 특이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클론 선택’ 원리는 면역계가 한정된 자원으로 무한에 가까운 종류의 적에게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핵심 전략입니다.

특이성의 중요성: 왜 필요한가?

이토록 복잡한 특이성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만약 면역계의 공격에 특이성이 없다면, 우리 몸은 엄청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입게 될 것입니다. 특정 바이러스 단백질과 우리 몸의 정상 세포 단백질의 일부 모양이 비슷할 경우, 특이성이 낮은 면역계는 둘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여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특이성 덕분에 면역계는 공격 대상을 명확히 구별하여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군만 섬멸하는 정밀 타격이 가능합니다. 이는 독감 예방주사가 코로나19를 막지 못하는 이유이자, 현대 표적항암제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원리이기도 합니다.

한 번의 경험은 영원히: 면역 기억(Immune Memory)

마지막으로, 면역계의 핵심 개념 중 가장 실용적이고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리가 바로 면역 기억(Immune Memory)입니다. 이는 면역계가 한번 싸워본 적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놀라운 원칙입니다. 어릴 적 홍역이나 수두를 앓고 나면 평생 다시 걸리지 않는 이유, 인류를 수많은 감염병의 공포에서 해방시킨 백신의 원리가 바로 이 면역 기억 덕분입니다.

면역계는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에 있을지 모를 똑같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훨씬 더 효율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합니다. 이는 마치 한 번 겪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는 현명한 지혜와도 같습니다.

1차 면역 반응 vs 2차 면역 반응: 아마추어와 베테랑의 차이

이 기억의 힘은 우리 몸이 특정 병원체를 처음 만났을 때와 두 번째 만났을 때의 반응을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 1차 면역 반응 (Primary Response): 우리 몸이 특정 병원체를 ‘생전 처음’ 만났을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면역계는 이 낯선 침입자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수용체를 가진 림프구를 찾아내고, 클론 군단을 만들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보통 1~2주). 반응 속도가 느리고 항체 생성량도 적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간에 열이 나고 아픈, 즉 ‘병을 앓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 2차 면역 반응 (Secondary Response): 한번 전투를 치른 뒤 똑같은 병원체가 다시 침입했을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이는 1차 반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며, 효율적입니다. 마치 잘 훈련된 베테랑 부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경보가 울리자마자 즉시 출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이 미처 세력을 키우기도 전에 순식간에 제압해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증상을 거의 느끼지 못하거나 아주 가볍게 앓고 지나가게 됩니다.

면역 기억의 실체: 기억 세포(Memory Cell)라는 베테랑 군인들

이 놀라운 2차 면역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주인공이 바로 기억 세포(Memory Cell)입니다. 1차 면역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활성화된 T세포와 B세포의 일부는 최전선에서 싸우다 죽는 ‘효과기 세포(Effector cell)’가 되는 대신, 전투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오래 살아남는 ‘기억 세포’로 분화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합니다.

이 기억 세포들은 수십 년, 혹은 평생 동안 우리 몸의 림프절, 골수 등 전략적 요충지에 조용히 주둔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일종의 ‘예비군’ 또는 ‘베테랑 부대’와 같습니다.

  • 기억 T세포 (Memory T cells): 소수 정예의 정찰병처럼 온몸을 순찰하며, 과거에 만났던 적의 흔적을 가진 세포가 나타나는 즉시 경보를 울리고 다른 면역세포들을 신속하게 활성화시킵니다.
  • 기억 B세포 (Memory B cells): 과거의 적이 다시 나타나면, 즉시 대량의 고품질 항체를 생산하는 ‘형질세포’로 매우 빠르게 변신합니다. 1차 반응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정밀한 항체를 뿜어내 적을 무력화시킵니다.

1차 반응과 2차 반응의 차이점

구분1차 면역 반응 (첫 감염)2차 면역 반응 (재감염)
반응 속도느림 (수일 ~ 수주 소요)매우 빠름 (수 시간 ~ 수일)
항체 생성량낮음매우 높음 (100~1,000배 이상)
주요 항체 종류IgM 우선 생성IgG 위주 (더 강력하고 오래 지속됨)
결과질병 증상 발생, 회복 후 면역 기억 형성증상이 없거나 매우 경미함, 면역력 강화

면역 기억의 활용: 백신, 가장 위대한 의학적 발명품

바로 이 면역 기억의 원리를 인위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백신(Vaccine)입니다. 백신은 독성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킨 바이러스나 세균의 일부(항원)를 우리 몸에 주입하여, 실제 질병을 앓지 않으면서도 면역계가 ‘모의 훈련’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이 훈련을 통해 우리 몸은 실제 적과 싸운 것처럼 착각하여 강력한 기억 세포 군단을 미리 만들어 놓게 됩니다. 덕분에 훗날 진짜 병원체가 침입했을 때, 우리는 이미 잘 훈련된 베테랑 부대를 가진 상태이므로 신속하고 강력한 2차 면역 반응을 통해 질병을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치료에 필요한 면역계의 핵심 개념을 활용하여 질병 예방을 가능하게 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의 하나입니다.

핵심 개념의 조화: 생명의 균형을 이루다

지금까지 살펴본 면역계의 핵심 개념 세 가지-자기/비자기 구분, 특이성, 그리고 면역 기억-는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우리 몸의 군대는 먼저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적의 종류에 맞춰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특이적으로’ 선택하여 공격한 뒤, 그 경험을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합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이 균형을 이루며 작동하기에, 우리는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뒤의 내용에서는 이 위대한 원칙을 수행하는 실제 주인공들, 즉 면역계의 세포들과 그들이 머무는 기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는 기회를 가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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