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샘물은 어떻게 온몸을 적실까? – 몸속 수분 진액의 순환 경로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위(胃)와 비(脾)의 정교한 소화 과정을 거쳐 생명 활동의 기반이 되는 몸속 수분 진액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진액은 생성되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 만들어진 진액이 인체 구석구석,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필요한 모든 곳에 정확히 도달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을 한의학에서는 ‘수포(輸布)’라고 부릅니다.
수포란 ‘수송하고 분포한다’는 뜻으로, 생성된 몸속 수분 진액을 온몸의 장부와 조직, 피부와 모발에까지 퍼뜨리는 전신 순환 시스템을 의미합니다.[1] 이 위대한 여정은 비(脾), 폐(肺), 신(腎)이라는 세 핵심 장부의 완벽한 협력 플레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 장부들이 어떻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 몸을 촉촉하게 유지하는지,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단계: 운송의 시작점, 비(脾)의 승청(昇淸) 작용
몸속 수분 진액 순환의 첫 번째 주자는 바로 생성의 주역이었던 비(脾)입니다. 비는 생성된 수곡정미(水穀精微)와 진액 중 맑고 가벼운 기운(淸)을 위로 들어 올려 폐(肺)로 보내는 ‘승청(昇淸)’ 작용을 담당합니다.[2] 이는 마치 펌프가 지하수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비의 힘찬 펌프질이 있어야만 진액 순환의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비의 기능이 저하되어 이 운송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진액이 잘 생성되어도 위로 전달되지 못해 얼굴이나 상체는 건조한데, 몸은 붓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2단계: 전신 분무기, 폐(肺)의 선발(宣發)과 숙강(肅降)
비(脾)로부터 맑은 몸속 수분 진액을 전달받은 폐(肺)는 마치 정교한 자동 분무기처럼 이를 온몸으로 퍼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 역할은 ‘선발’과 ‘숙강’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면서도 보완적인 기능으로 이루어집니다.[3]
- 선발(宣發): 위로, 그리고 바깥으로 널리 펼쳐 보내는 기능입니다. 폐는 몸속 수분 진액을 안개처럼 미세하게 만들어 피부와 모발 등 우리 몸의 가장 바깥 부분까지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우리가 느끼는 피부의 윤기는 바로 폐의 선발 기능 덕분입니다.
 - 숙강(肅降): 맑게 하여 아래로 내려보내는 기능입니다. 폐는 진액의 일부를 아래쪽 장부, 특히 신(腎)으로 내려보내 전신의 수액 대사가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돕습니다. 또한, 호흡을 통해 탁한 기운과 불필요한 수분을 몸밖으로 배출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처럼 폐는 위로는 몸속 수분 진액을 전신에 골고루 뿌려주고, 아래로는 다음 단계인 신장으로 보내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합니다. 이 두 기능의 균형이 깨지면 기침, 가래가 생기거나 피부가 건조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3단계: 수분 관리 총사령관, 신(腎)의 기화(氣化) 작용
폐(肺)로부터 진액을 전달받은 신(腎)은 우리 몸의 수분 대사를 총괄하는 최고 사령관 역할을 합니다. 신은 ‘기화(氣化)’ 작용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온 액체 성분을 최종적으로 관리합니다.[4]
신장의 기화 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체내의 진액 중 재활용이 필요한 맑은 부분(淸)은 다시 기화시켜 증기처럼 위로 올려보냅니다. 이 증기는 다시 폐로 올라가 전신을 촉촉하게 만드는 몸속 수분 진액의 순환 고리를 완성합니다. 둘째, 대사를 마치고 남은 불필요한 수분과 노폐물, 즉 탁한 부분(濁)은 방광으로 보내 소변으로 만들어 몸밖으로 배출시킵니다. 이처럼 신장은 우리 몸의 수분 댐과 정수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몸속 수분 진액의 양과 질을 최종적으로 조절하는 것입니다.
| 장부 | 핵심 기능 | 몸속 수분 진액 순환에서의 역할 | 방향성 | 
|---|---|---|---|
| 비 (脾) | 승청(昇淸) / 운송 | 생성된 진액을 폐로 끌어올리는 펌프 역할 | 아래(下) → 위(上) | 
| 폐 (肺) | 선발(宣發) & 숙강(肅降) | 진액을 전신 피부로 뿌리고, 신장으로 내려보내는 분배 허브 역할 | 위(上) ↔ 밖(外) / 아래(下) | 
| 신 (腎) | 기화(氣化) | 맑은 진액은 재흡수하여 위로 보내고, 탁한 수액은 소변으로 배출하는 최종 관리자 역할 | 위(上) / 밖(배출) | 
결론적으로, 몸속 수분 진액의 순환, 즉 ‘수포’ 과정은 비(脾)가 끌어올리고, 폐(肺)가 뿌려주며, 신(腎)이 관리하는 세 장부의 정교한 협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은 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통로인 ‘삼초(三焦)’를 통해 진행됩니다. 어느 한 곳이라도 기능이 저하되면 진액 순환에 정체가 생겨 건조함, 부종 등 다양한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촉촉함은 이 세 장부의 조화로운 오케스트라 연주에 달려있는 셈입니다.
참고 자료
- 전국한의과대학 생리학 교수, 『동의생리학』, 의방출판사, 2024. – 이 책은 진액의 생성, 수포(輸布), 배설 과정이 비(脾), 폐(肺), 신(腎) 및 삼초(三焦) 등 여러 장부의 공동 작용에 의해 완성된다고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
 - 영한의원, ‘한의학의 비(脾)에 대하여 설명드립니다’. – 해당 자료는 비(脾)가 영양물질과 수액(진액)을 전신의 각 조직으로 운송(수포)하여 윤택하게 하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 푸르미/김두칠, ‘폐는 선발(宣發)과 숙강(肅降) 기능을 주관한다’. – 이 글은 폐가 비(脾)로부터 수송된 진액을 선발 기능을 통해 온몸의 피모까지 퍼뜨리고, 숙강 기능을 통해 아래로 내려보내는 역할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 ‘기화(氣化)’. – 이 자료는 기화 작용을 ‘장부기관의 생리적 활동’으로 정의하며, 특히 ‘삼초의 수액대사 기능과 신, 방광의 비뇨기화 기능’을 그 예로 들어 진액 대사에서의 핵심 역할을 설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