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생리학> 1.3.2 한의학 혈(血), 생명을 자양하는 붉은 에너지의 모든 것

기와 혈의 상호 관계: ‘기는 혈의 스승, 혈은 기의 어머니’

지금까지 우리는 한의학 혈(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능을 하며, 또 어떤 장부들의 협력을 통해 온몸을 순환하는지 긴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는 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 바로 ‘기(氣)’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기와 혈의 관계는 그림자와 형체, 혹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로 설명됩니다. 이번 장에서는 ‘기위혈지수(氣爲血之帥), 혈위기지모(血爲氣之母)’라는 핵심 이론을 통해, 한의학 혈의 이해를 한 단계 더 심화시키는 기혈(氣血)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위혈지수(氣爲血之帥)’: 기는 혈을 이끄는 장수(將帥)이다

‘기위혈지수(氣爲血之帥)’는 “기는 혈의 장수와 같다”는 의미로, 혈액의 생성부터 순환, 통제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기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함을 뜻합니다.[1] 유형(有形)의 물질인 한의학 혈은 무형(無形)의 에너지인 기의 통솔이 없으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의 이러한 ‘장수’로서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기를 통한 혈의 생성 (氣能生血): 혈이 음식물(수곡정미)로부터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비위(脾胃)의 운화기능, 폐(肺)의 호흡, 심(心)의 화적(化赤) 작용 등 각 장부의 왕성한 기화(氣化) 활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기가 부족하면 혈을 만드는 공장 자체가 멈추게 됩니다. 임상에서 혈허(血虛) 환자에게 기를 보하는 보기(補氣) 약물을 함께 처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기를 통한 혈의 운행 (氣能行血): “기가 가면 혈도 간다(氣行則血行)”는 말처럼, 혈액이 맥관을 따라 흐르는 근본적인 동력은 바로 기의 추동력입니다. 심기(心氣)가 힘차게 밀어주고, 폐기(肺氣)가 온몸으로 퍼뜨려주며, 간기(肝氣)가 막힘없이 소통시켜줄 때 혈액은 비로소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등으로 기의 흐름이 막히면(氣滯), 혈의 흐름도 정체되어 어혈(瘀血)이 생기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2]
  • 기를 통한 혈의 통제 (氣能攝血): 기는 혈액이 맥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는 역할(고섭작용, 固攝作用)을 합니다. 특히 비기(脾氣)는 혈을 통솔하는 ‘통혈(統血)’ 기능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가 허약해지면 혈액을 제어하는 힘이 약해져 각종 출혈이 발생하게 됩니다.

‘혈위기지모(血爲氣之母)’: 혈은 기를 품는 어머니이다

기가 혈을 이끄는 장수라면, 반대로 혈은 기가 머물고 활동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이를 ‘혈위기지모(血爲氣之母)’라고 합니다.[3] 기는 형체가 없는 에너지이므로, 혈이라는 자양분과 거처가 없으면 허공에 흩어지고 맙니다. 한의학 혈이 ‘어머니’로서 기에 대해 갖는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혈은 기의 거처 (血能載氣): 혈은 기를 실어 나르는 운반체입니다. 기는 혈액 속에 녹아들어 맥관을 따라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각 조직과 장부에서 생리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즉, 혈은 기가 머물며 그 작용을 펼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을 제공합니다.
  • 혈은 기의 자양분 (血能養氣): 혈은 기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합니다. 따라서 혈이 부족하면 기 또한 자양분을 잃고 쇠약해집니다. 심한 혈허 환자가 안색이 창백할 뿐만 아니라, 기운이 없고 목소리에 힘이 없으며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대량 출혈과 같은 위급 상황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갑작스럽게 많은 피를 흘리면, 혈액과 함께 기 또한 대량으로 빠져나가면서(氣隨血脫) 식은땀을 흘리고, 호흡이 미약해지며, 심하면 의식을 잃는 ‘기탈(氣脫)’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기와 한의학 혈이 얼마나 운명 공동체적인 관계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관계기가 혈에 대한 작용 (氣爲血之帥)혈이 기에 대한 작용 (血爲氣之母)
역할 비유장수 (Commander)어머니 (Mother) / 거처 (Residence)
주요 기능혈을 생성하고, 운행하며, 통제기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영양을 공급함
병리적 관계기허(氣虛) → 혈허(血虛), 혈어(血瘀), 출혈혈허(血虛) → 기허(氣虛), 기탈(氣脫)

결론적으로, 기와 혈은 음양(陰陽)과 같이 서로를 전제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며, 함께 생명 활동을 이끌어가는 한 쌍의 파트너입니다. 어느 한쪽의 문제도 결국 다른 한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의학 혈 관련 질환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기의 상태를 함께 살피고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깊은 상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한의학이 인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치료에 접근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참고 자료

  1. 전국한의과대학 생리학교수, 『동의생리학』, 집문당, 2016. “기위혈지수(氣爲血之帥)란 기가 혈액에 대하여 추동(推動), 온후(溫煦), 고섭(固攝)하는 기능과 혈액생성을 주재함을 말한다.” [도서 정보 확인]
  2. 『혈증론(血證論)』, 청나라 당종해(唐容海) 저. “기가 체하면 혈이 어혈이 된다.” (원문: “氣滯爲瘀”)
  3.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지식정보서비스. “혈위기모(血爲氣母): 기와 혈의 상호 관계를 이르는 말. 혈은 기의 물질적 기초가 되며, 또한 인체의 양기가 밤이 되면 혈분(血分)으로 들어가서 쉬므로 이른 말이다.” [자료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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