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순환의 엔진: 심(心)과 폐(肺)의 협력 작용
지금까지 우리는 한의학 혈(血)의 생성 과정과 그 핵심적인 기능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혈은 어떻게 멈추지 않고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흘러가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바로 혈액 순환의 최고 사령관인 심장(心)과, 그를 돕는 유능한 보좌관 폐(肺)의 정교한 협력 작용에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혈액 순환의 핵심 동력원인 심장과 폐의 역할을 통해 한의학 혈의 운행 원리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순환의 주재자, 심(心): ‘심주혈맥(心主血脈)’의 원리
‘심주혈맥(心主血脈)’은 “심장이 혈과 맥을 주관한다”는 의미로, 혈액 순환에 있어 심장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입니다.[1] 심장은 마치 군주(君主)와 같이 혈액 순환 시스템 전체를 통솔합니다. 이러한 작용은 ‘심기(心氣)’, 즉 심장의 기능적 에너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심기가 힘차게 박동하면, 그 추동력(推動力)에 의해 혈액은 맥관(脈管)을 따라 막힘없이 전신으로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2]
심장의 이러한 펌프 작용이 원활하면, 혈액은 온몸 구석구석에 영양을 공급하여 얼굴에 건강한 혈색이 돌고, 신체는 활기를 띠게 됩니다. 반면,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심기가 약해지면(心氣虛), 혈액을 밀어내는 힘이 부족해져 순환이 더뎌집니다. 이는 안색이 창백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며,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국, 힘찬 혈액 순환의 근본적인 동력은 바로 왕성한 심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순환의 보좌관, 폐(肺): ‘조백맥(朝百脈)’의 원리
심장이 혈액 순환의 엔진이라면, 폐(肺)는 그 엔진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중요한 조력자입니다. 한의학에서는 폐의 이러한 역할을 ‘조백맥(朝百脈)’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온몸의 모든 혈맥이 폐를 향해 모여든다”는 의미입니다.[3] 이는 물리적인 모임을 뜻하기보다는, 전신의 혈액이 가스 교환과 기(氣)의 충전을 위해 반드시 폐를 거쳐야 하는 기능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폐는 호흡을 통해 자연의 맑은 기운(淸氣)을 받아들이고, 이를 수곡정미와 합하여 가슴에 ‘종기(宗氣)’를 형성합니다. 이 종기는 심장의 맥으로 흘러 들어가(貫心脈) 심기의 박동을 직접적으로 돕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기가 가면 혈도 간다(氣行則血行)”는 원리처럼, 폐가 기를 온몸으로 퍼뜨리는 ‘선발숙강(宣發肅降)’ 작용은 혈액이 기의 흐름을 따라 원활하게 순행하도록 이끌어주는 보조적인 동력이 됩니다. 즉, 폐의 호흡이 깊고 안정적이어야 기의 순환이 원활해지고, 이는 곧 한의학 혈의 순환을 돕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 구분 | 심(心) – 군주(君主) | 폐(肺) – 상전(相傅) | 
|---|---|---|
| 핵심 개념 | 심주혈맥(心主血脈): 혈액 순환의 주재자 | 조백맥(朝百脈): 혈액 순환의 보좌관 | 
| 작용 방식 | 심기(心氣)의 박동으로 혈액을 펌핑함 (주된 동력) | 종기(宗氣)로 심장을 돕고, 기(氣)의 순환으로 혈액을 이끎 (보조 동력) | 
| 기능 저하 시 | 심계, 정충, 흉민, 맥이 약해짐 | 호흡이 짧아짐, 기운 없음, 혈액 순환 장애 | 
이처럼 혈액 순환은 심장의 강력한 추동력과 폐의 부드러운 보조 작용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는 각 장부가 독립적으로 기능하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여 생명 현상을 유지한다는 한의학의 유기체적 관점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혈액 순환에는 이 두 장부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부들이 더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혈액을 저장하고 통제하는 간(肝)과 비(脾)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위론(痿論)」. “심장은 몸의 혈맥을 주관한다.” (원문: “心主身之血脈”) [원문 검색]
 - 전국한의과대학 생리학교수, 『동의생리학』, 집문당, 2016. “심주혈맥(心主血脈)은 심기가 혈액을 맥관 내에서 운행시키는 추동력이 됨을 의미한다. 심장, 맥, 혈액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계통을 형성하여 혈액순환 기능을 완성한다.” [도서 정보 확인]
 -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경맥별론(經脈別論)」. “폐는 모든 맥이 모여드는 곳이며, 정미로운 물질을 피모로 보내준다.” (원문: “肺朝百脈, 輸精於皮毛”) [원문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