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생리학> 1.3.2 한의학 혈(血), 생명을 자양하는 붉은 에너지의 모든 것

혈(血)의 핵심 기능 ①: 온몸을 적시는 ‘자양유윤(滋養濡潤)’ 작용

지금까지 우리는 한의학 혈(血)이 음식물(수곡정미)과 생명의 정수(신정)라는 두 가지 중요한 근원을 통해 생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정교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혈은 이제 온몸을 순환하며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첫 번째 기능이 바로 ‘자양유윤(滋養濡潤)’ 작용입니다.[1] 이는 글자 그대로 온몸에 영양을 공급(자양)하고, 메마르지 않도록 촉촉하게 적셔준다(유윤)는 의미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활동입니다.

생명의 강물, 혈(血)이 전신을 흐를 때

마치 대지를 흐르는 강물이 주변의 모든 생명체에게 물을 공급하여 풍요롭게 만들 듯, 우리 몸속의 한의학 혈도 맥관(脈管)을 따라 끊임없이 순환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조직과 기관에 영양분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자양유윤 작용 덕분에 우리의 몸은 정상적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오장육부(五臟六腑): 모든 장부는 혈로부터 영양을 받아야만 각자의 고유한 생리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肝)은 혈을 받아야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소설(疏泄) 기능을 다할 수 있고, 심(心)은 혈이 충만해야 힘차게 박동할 수 있습니다.
  • 피육(皮肉)과 근골(筋骨): 피부가 윤기 있고 탄력 있는 것, 근육이 힘차게 움직이고, 뼈가 견고한 것 모두 혈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 모발(毛髮)과 오관(五官): 머리카락에 윤기가 흐르고 잘 자라는 것, 눈이 밝고 잘 보이며, 귀가 소리를 잘 듣는 것 또한 모두 혈의 자양 작용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발은 혈의 나머지(髮者血之餘)’라고 하여 모발 상태를 통해 혈의 충실도를 가늠하기도 합니다.[2]

이처럼 한의학 혈의 자양유윤 기능은 우리 몸의 특정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인체의 모든 구성 요소가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보편적인 바탕이 됩니다.

혈허(血虛): 자양의 강물이 마를 때 나타나는 신호들

만약 혈의 생성량이 부족하거나 과도한 소모로 인해 혈이 부족해지는 ‘혈허(血虛)’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자양유윤이라는 핵심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리 몸은 다양한 ‘메마름’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이는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지 못한 땅이 갈라지고 황폐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혈허의 대표적인 증상들은 혈이 어느 부위에 영양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지에 따라 명확하게 나타납니다.[3]

  • 안색 창백과 피부 건조: 혈이 얼굴과 피부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면 낯빛이 하얗게 뜨거나 누렇게 변하고, 피부는 윤기를 잃고 건조해지며 각질이 일어나기 쉽습니다.[4]
  • 손발 저림과 근육 경련: 사지 말단까지 혈이 도달하지 못하면 손발이 쉽게 저리고 감각이 둔해지며, 근육에 영양이 부족해지면 눈꺼풀이 떨리거나 장딴지에 쥐가 잘 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모발 건조와 탈모: ‘혈의 나머지’인 모발은 혈허의 영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푸석거리며, 윤기를 잃고 쉽게 빠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 시력 저하와 안구 건조: ‘간은 눈에 구멍을 낸다(肝開竅于目)’고 하는데, 간혈(肝血)이 부족해지면 눈을 충분히 자양하지 못해 시력이 떨어지고, 눈이 뻑뻑하며 건조해집니다.
신체 부위혈(血)이 충족할 때혈허(血虛) 상태일 때
안면/피부안색이 붉고 윤기가 흐름 (紅潤)안색이 창백하거나 누렇게 됨 (萎黃)
근육/사지움직임이 힘차고 민첩함손발 저림, 근육 경련, 무력감
모발굵고 윤기 있으며 풍성함가늘고 푸석하며 쉽게 빠짐
눈(目)시력이 밝고 눈이 촉촉함시력 저하, 안구 건조, 침침함

결국, 건강하고 생기 있는 외모와 활기찬 신체 기능은 모두 충족한 한의학 혈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혈의 자양유윤 작용은 우리 몸의 형태를 유지하고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입니다. 하지만 혈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혈이 우리의 정신 활동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 두 번째 핵심 기능을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 전국한의과대학 생리학교수, 『동의생리학』, 집문당, 2016. “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양유윤(滋養濡潤) 작용이다. 혈은 맥관을 따라 전신을 순환하며 오장육부, 피모, 근골 등 모든 조직 기관에 영양을 공급하고 정상적인 생리 활동을 유지하도록 한다.” [도서 정보 확인]
  2.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오장생성편(五臟生成篇)」. “머리카락은 혈의 나머지이다(髮者血之餘). 혈이 왕성하면 머리카락이 윤택하고, 혈이 쇠하면 머리카락이 희어진다.” [원문 검색]
  3.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지식정보서비스. “혈허(血虛): 혈이 허하거나 부족해서 생긴 병증. 대개 얼굴에 핏기가 없고 입술이 창백하며 머리가 어지럽고 잠을 못 이루며, 손발에 감각이 둔해지거나 경련이 인다.” [자료 확인]
  4.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피부 건조증, 한의학에서는 혈(血)의 기능 중심으로 파악”, e-daily, 2014. “혈허(血虛)는 혈의 생산에 문제가 있거나 지나치게 소모되면 피부와 모발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의 기능이 쇠퇴하는 상태를 말한다.” [기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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