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은 왜 고통을 만들어내는가?: 오작동의 원리
우리는 이제 신경병증성 통증이 신경계 자체의 고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짓 비상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경계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토록 끔찍하고 기이한 통증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그 고장 난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왜 신경병증성 통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장 난 신경계의 내부 사정
손상된 신경은 단순히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스스로 통증을 만들어내는 ‘통증 공장’으로 변해버립니다. 그 핵심적인 오작동 원리는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이소성 발화 (Ectopic Firing): 제멋대로 울리는 경보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소성 발화’ 현상입니다. 정상적인 신경은 외부 자극이 있을 때만 신호를 발생시키지만, 손상된 신경은 마치 고장 난 자동차 경보기가 이유 없이 울려대듯, 아무런 자극이 없어도 제멋대로 전기 신호, 즉 통증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이 거짓 신호들이 끊임없이 뇌로 전달되기 때문에, 환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지속적인 통증이나 저림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2. 신경의 과흥분성 (Hyperexcitability): 과민해진 센서
손상된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 ‘과흥분’ 상태에 빠집니다. 이는 마치 마이크의 감도를 최대로 높여놓아 작은 숨소리에도 ‘삐-‘하는 하울링이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즉, 평소에는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을 약한 자극(옷깃 스치기 등)에도 신경이 과도하게 흥분하여 강력한 통증 신호를 뇌로 보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옷깃만 스쳐도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질통)이 나타나는 주된 이유입니다.
3. 중추신경 감작과의 연결: 악순환의 시작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거짓 신호와 과잉 반응이 지속될 경우, 단순히 말초신경의 문제를 넘어 뇌와 척수, 즉 중추신경계마저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거짓 통증 신호에 시달린 뇌와 척수는 결국 스스로 예민해지는 ‘중추신경 감작’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중추신경계가 통증 신호를 더욱 증폭시키고, 통증이 원래의 손상 부위를 넘어 다른 부위로 퍼져나가며, 통증이 통증을 낳는 끔찍한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많은 신경병증성 통증이 만성화되고 치료가 어려워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경병증성 통증의 핵심 오작동 메커니즘
오작동 원리 | 비유 | 결과 (환자가 느끼는 증상) |
---|---|---|
이소성 발화 |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저절로 울리는 비상벨 |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자발적인 통증, 저림, 화끈거림 |
신경 과흥분성 | 감도를 최대로 높인 마이크 (작은 소리에도 하울링) | 옷깃만 스쳐도 아픈 극심한 통증 (이질통, 통각과민) |
중추신경 감작 | 계속된 거짓 경보에 관제탑 전체가 예민해진 상태 | 통증의 증폭, 만성화, 다른 부위로의 확산 |
이 표는 신경병증성 통증이 어떻게 여러 단계의 오작동을 통해 발생하고 악화되는지를 요약하여 보여줍니다.
참고 자료
- Costigan, M., Scholz, J., & Woolf, C. J. (2009). Neuropathic pain: a maladaptive response of the nervous system to damage.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 32, 1–32. 손상된 신경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이소성 발화’가 신경병증성 통증의 핵심적인 말초 기전임을 설명합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768556/
- Baron, R., et al. (2010). Neuropathic pain: diagnosis, pathophysiological mechanisms, and treatment. The Lancet Neurology, 9(8), 807-819. 말초신경의 손상으로 인한 지속적인 통증 신호가 중추신경계의 가소성 변화, 즉 ‘중추신경 감작’을 유발하여 통증을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eur/article/PIIS1474-4422(10)70143-5/fulltext
- Finnerup, N. B., et al. (2021). Neuropathic pain: an updated grading system for research and clinical practice. Pain, 162(6), 1599–1606. 신경병증성 통증이 중추신경 감작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만성화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정확한 진단과 기전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8112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