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통증이 만성화되는가?: 핵심 기전 ‘중추신경 감작’
우리는 이제 만성 통증이 단순히 오래가는 통증이 아니라, 우리 몸의 경보 시스템 자체가 고장 나버린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명확해집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 멀쩡하던 경보 시스템은 고장 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지긋지긋한 고통의 고리를 끊어낼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 답의 중심에는 바로 ‘중추신경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 신경이 과민성대장증후군처럼 예민해지는 이유
혹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독 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중추신경 감작은 우리의 통증 시스템에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상상하면 쉽습니다. 즉, 만성 통증 원인의 가장 핵심은 바로 우리의 뇌와 척수(중추신경계)가 통증 신호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과민하고 예민한 상태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통증 신호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신경계는, 마치 계속되는 소음에 시달린 사람처럼 극도로 예민해집니다. 결국 신경계는 통증을 기억하고 학습하여, 아주 작은 자극에도 ‘일단 비상벨부터 울리고 보는’ 과잉 반응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상태가 되면 두 가지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1. 이질통(Allodynia): “옆집 토스트 연기에도 화재경보기가 울려요”
중추신경 감작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이질통(Allodynia)’입니다. 이는 원래 통증을 유발하지 않아야 할 매우 약한 자극에도 통증을 느끼는 현상을 말합니다. 비유하자면, 화재경보기가 너무 예민해져서 실제 불이 난 것도 아닌데, 옆집에서 토스트 굽는 연기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것과 같습니다. 만성 통증 환자들이 “옷깃만 스쳐도 아파요”, “바람만 불어도 살이 시려요”라고 호소하는 것이 바로 이 이질통 때문입니다. 이는 신경계가 무해한 자극(촉각, 온도 변화)을 유해한 자극(통증)으로 오인하여 잘못된 경보를 울리는 것입니다.
2. 통각과민(Hyperalgesia): “볼륨 다이얼 1단이 바로 10단으로”
또 다른 핵심 특징은 ‘통각과민(Hyperalgesia)’입니다. 이는 약한 통증 자극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심한 통증을 느끼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살짝 꼬집었을 때 ‘아야’ 하고 마는 정도의 통증(볼륨 1)이었다면, 신경이 감작된 상태에서는 마치 망치로 맞은 듯한 극심한 고통(볼륨 10)으로 느끼게 됩니다. 통증 볼륨 다이얼이 고장 나, 아주 살짝만 돌려도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가장 중요한 만성 통증 원인 중 하나로,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만듭니다.
정상 신경계 vs 감작된 신경계: 자극에 대한 반응 차이
자극의 종류 | 정상 신경계의 반응 | 감작된 신경계의 반응 (만성 통증) |
---|---|---|
무해한 자극 (옷깃 스치기, 쓰다듬기) | 촉각으로 인지 (통증 없음) | 통증으로 오인 (이질통 Allodynia) |
약한 통증 자극 (살짝 꼬집기) | 가벼운 통증으로 인지 | 극심한 통증으로 증폭 (통각과민 Hyperalgesia) |
이 표는 중추신경 감작이 어떻게 정상적인 감각을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왜곡시키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중추신경 감작’은 단순히 신경이 조금 예민해진 상태가 아닙니다. 이는 통증 신호를 처리하는 신경계 자체가 구조적, 기능적으로 변성되어, 외부 자극 없이도 스스로 통증을 만들고 작은 신호도 거대한 통증으로 증폭시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만성 통증은 단순히 ‘오래가는 급성 통증’이 아니라, 신경계 기능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별개의 신경학적 질병입니다. 이 근본적인 만성 통증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치료 전략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참고 자료
- Nijs, J., et al. (2014). Recognizing and treating central sensitization in patients with chronic pain: lessons from the clinic. Pain and Therapy, 3(1), 35-51. 중추신경 감작이 만성 통증의 핵심 기전임을 임상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이를 인식하는 것이 치료에 왜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40122-014-0028-9
- Allodynia: When Touch Hurts But Shouldn’t. (2022). Cleveland Clinic. 이질통(Allodynia)을 정의하고, 그것이 중추신경 감작과 섬유근육통 같은 만성 통증 상태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합니다.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symptoms/22833-allodynia
- Woolf, C. J. (2011). Central sensitization: implications for the diagnosis and treatment of pain. Pain, 152(3 Suppl), S2–S15. 통각과민(Hyperalgesia)과 이질통이 중추신경 감작의 대표적인 임상적 징후임을 설명하는 권위 있는 리뷰 논문입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268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