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통증 볼륨, 조절할 수 있습니다
앞선 페이지들에서 하나의 통증 신호가 우리 몸속에서 어떤 여정을 거치고, 또 얼마나 정교하게 조절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통각수용기에서 시작된 신호가 뇌에서 ‘경험’으로 완성되고, 척수의 ‘관문’에서 그 세기가 조절되는 과정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단 하나의 강력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통증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고정불변의 형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페이지에서는 앞에서 공부한 통증의 4단계 여정과 관문 조절설을 종합하여, 이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통증, 스위치가 아닌 ‘볼륨 다이얼’인 이유
많은 사람이 통증을 ‘ON/OFF’ 스위치처럼 생각합니다. 다치면 스위치가 켜져서 아프고, 나으면 스위치가 꺼져서 안 아프다는 식이죠. 하지만 이는 통증의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통증은 스위치가 아니라, 소리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볼륨 다이얼’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1] 우리 몸의 손상은 통증이라는 음악을 재생시키는 계기가 될 뿐, 그 음악의 볼륨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행동입니다.
관문 조절설에서 보았듯, 우리의 신경계는 통증 신호가 뇌로 가는 길목에서 그 ‘볼륨’을 끊임없이 조절하고 있습니다. 어떤 요인들은 이 볼륨을 최대로 키우는 반면, 어떤 요인들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줄여주기도 합니다.
통증의 볼륨을 ‘높이는’ 요인들
음악의 볼륨을 높이면 작은 소리도 귀청이 터질 듯 크게 들리는 것처럼, 특정 요인들은 우리의 통증 경험을 극적으로 증폭시킵니다. 뇌는 불안, 공포,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도록 진화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뇌는 척수의 통증 관문을 활짝 열어젖히라는 ‘볼륨 업’ 신호를 보냅니다.[2] 그 결과, 원래는 3 정도의 통증이었을 것이 7이나 8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통증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라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재앙화 사고’ 역시 통증의 볼륨을 키우는 대표적인 주범입니다.
통증의 볼륨을 ‘낮추는’ 요인들
반대로, 우리는 통증의 볼륨을 의식적으로 줄일 수도 있습니다. 아픈 곳을 문지르는 행위(마사지, 물리치료)는 척수에서 통증 관문을 닫아 즉각적으로 볼륨을 줄여줍니다. 또한, 우리의 뇌는 더욱 강력한 ‘볼륨 다운’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즐거운 영화를 보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며 다른 일에 몰두하면, 통증에 할당되었던 뇌의 자원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면서 자연스럽게 통증을 덜 느끼게 됩니다(주의 분산).[3] 명상이나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이완시키면, 뇌에서 엔도르핀과 같은 천연 진통제가 분비되어 척수의 통증 관문을 닫고 볼륨을 효과적으로 줄여줍니다.[4]
내 안의 통증 볼륨 다이얼: 소리를 높이는 요인 vs 줄이는 요인
볼륨을 높이는 것 (통증 증폭) ⬆️ | 볼륨을 줄이는 것 (통증 완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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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스트레스, 불안, 공포, 분노, 우울감 | 정서: 이완, 평온, 기쁨, 안정감, 감사 |
생각: “이 통증은 끔찍해”, 재앙화 사고, 통증에 대한 과도한 집중 | 생각: “이건 조절할 수 있어”, 긍정적 자기 대화, 주의 분산(몰입) |
행동: 사회적 고립, 활동량 감소, 수면 부족 | 행동: 적절한 운동, 사회적 교류, 충분한 수면, 건강한 식단 |
신체: 추가적인 조직 손상, 염증 지속 | 신체: 마사지, 찜질, 경피신경전기자극(TENS), 침술 |
이 표는 통증이라는 볼륨 다이얼을 조절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요인들을 활용하여 통증 경험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통증 경험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렇습니다. 통증은 단순히 켜지고 꺼지는 스위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그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볼륨 다이얼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통증 앞에서 무력하게 고통받는 피해자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어가며 통증의 볼륨을 현명하게 조절하는 능동적인 관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통증이라는 음악을 완전히 꺼버릴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음악이 우리 삶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도록, 충분히 관리 가능한 배경음악 수준으로 볼륨을 낮출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변화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신경가소성). 즉, 우리가 통증을 관리하는 노력을 지속할수록, 우리 뇌는 통증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고 통증의 볼륨을 더 효과적으로 조절하게 됩니다.[5]
물론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볼륨을 줄여 일상생활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통증이라는 음악이 내 삶의 배경음악으로 성가시게 연주될 때, 그 볼륨 다이얼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참고 자료
- Moseley, G. L., & Butler, D. S. (2015). Fifteen years of explaining pain: the past, present, and future. The Journal of Pain, 16(9), 807-813. 통증이 고정된 손상 지표가 아니라, 뇌가 해석하고 조절하는 복잡한 경험임을 강조하며 현대 통증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https://www.jpain.org/article/S1526-5900(15)00613-7/fulltext
- Stress and Pain. (2020).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APA).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요인이 어떻게 통증을 악화시키는지, 그리고 이완 요법 등이 어떻게 통증 완화에 기여하는지 그 관계를 설명합니다. https://www.apa.org/topics/pain/stress
- McCaul, K. D., & Malott, J. M. (1984). Distraction and coping with pain. Psychological bulletin, 95(3), 516–533. 통증에 대한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주의 분산)이 통증을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임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리뷰 논문입니다. https://psycnet.apa.org/record/1984-22281-001
- Cherkin, D. C., et al. (2016). Effect of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vs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or usual care on back pain and functional limitations in adults with chronic low back pain: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315(12), 1240-1249. 명상 기반 스트레스 완화(MBSR)가 만성 요통 환자의 통증과 기능 제한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임을 입증한 연구입니다.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fullarticle/2504811
- Seminowicz, D. A., et al. (2011). Effective treatment of chronic low back pain in humans reverses abnormal brain anatomy and function.The Journal of Neuroscience, 31(19), 7164-7171. 효과적인 통증 치료가 만성 통증으로 인해 변했던 뇌의 구조와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음을 보여주며, 뇌의 가소성과 회복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연구입니다. https://www.jneurosci.org/content/31/19/7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