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일반> 1-2 통증 조절의 모든 것: 당신이 몰랐던 통증의 진짜 원인과 관문 조절설

통증 조절의 비밀: 척수의 문지기, 관문 조절설(Gate Control Theory)

우리는 지난 글을 통해 하나의 통증 신호가 우리 몸의 말초에서 시작해 뇌라는 총사령부까지 전달되는 기나긴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정은 단순히 일방적인 보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몸에는 이 통증 신호의 강도를 조절하는, 놀랍도록 정교한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이번 글의 주제, ‘관문 조절설(Gate Control Theory)’입니다.

왜 아픈 곳을 문지르면 덜 아플까?

어딘가에 부딪혔을 때 우리도 모르게 아픈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 문지르는 것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을 넘어,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1965년, 캐나다의 심리학자 로널드 멜작(Ronald Melzack)과 영국의 생리학자 패트릭 월(Patrick Wall)은 의학계에 혁명을 일으킨 이론을 발표합니다. 바로 척수에 통증 신호가 뇌로 가는 것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문(Gate)’이 있다는 개념입니다.[1]

이 문을 열면 통증이 강하게, 닫으면 통증이 약하게 전달된다는 것이 관문 조절설의 개요입니다. 열고 닫는 과정을 통한 통증 조절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아래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척수의 문지기, 그 작동 원리

관문 조절설의 핵심은 통증 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과정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척수 단계에서 다른 감각 신호와의 경쟁을 통해 조절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 문을 ‘열려는’ 신호 vs 문을 ‘닫으려는’ 신호

기억하시나요? 통증 정보는 가느다란 신경 섬유(A-델타, C 섬유)를 통해 전달됩니다. 이 신호들은 척수에 있는 ‘문’을 활짝 열어서 통증 정보를 뇌로 보내려고 합니다. 반면, 우리가 아픈 곳을 문지를 때 발생하는 촉각이나 압력 같은 일반적인 감각 정보는 통증 섬유보다 훨씬 굵은 신경 섬유(A-베타 섬유)를 통해 전달됩니다. 그리고 이 굵은 섬유에서 온 신호는 척수의 ‘문’을 강력하게 닫으려고 합니다.[2]

2. 굵은 신경의 역습: 문지르기의 효과

아픈 부위를 문지르면, 굵은 A-베타 섬유가 대량으로 활성화됩니다. 이 섬유는 신호 전달 속도도 빨라서, C 섬유를 타고 느릿느릿 올라오는 통증 신호보다 먼저 척수의 관문에 도착해 문을 선점하고 닫아버립니다. 그 결과, 뇌로 올라가는 통증 신호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고, 우리는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능적으로 아픈 곳을 쓰다듬는 이유입니다. TENS(경피신경전기자극) 치료와 같은 물리치료도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뇌의 역할: 통증 관문을 원격 조종하는 총사령관

관문 조절설이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문’이 단지 척수 수준에서만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뇌, 즉 생각과 감정 역시 이 문을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하행성 통증 조절(Descending Pain Modulation)’이라고 부릅니다.[3]

예를 들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 공포에 휩싸여 있으면 뇌는 통증에 더 민감해지도록 척수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똑같이 다쳐도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죠. 반대로, 우리가 명상을 하거나, 즐거운 일에 몰두하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뇌에서는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같은 천연 진통 물질이 분비됩니다. 이 물질들은 척수로 내려가 통증 관문을 닫는 역할을 하여 통증을 효과적으로 줄여줍니다.[4] 결국, 몸과 마음은 통증이라는 경험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척수의 ‘통증 관문’을 여는 요인 vs 닫는 요인

통증 관문을 여는 요인 (통증 증가)통증 관문을 닫는 요인 (통증 감소)
신체적 요인: C 섬유와 A-델타 섬유의 활성화 (조직 손상)신체적 요인: A-베타 섬유의 활성화 (마사지, 문지르기, 온/냉찜질, TENS)
정서적 요인: 불안, 스트레스, 우울, 공포정서적 요인: 긍정적 감정, 이완, 안정감
인지적 요인: 통증에 대한 과도한 집중, 부정적인 생각, 재앙화 사고인지적 요인: 주의 분산(다른 일에 몰두), 통증에 대한 통제감, 긍정적 자기 대화

이 표는 통증 관문 조절설에 기반하여 우리의 통증 경험을 조절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통증은 단순히 손상된 부위에서 뇌로 전달되는 일방적인 신호가 아닙니다. 그것은 척수와 뇌의 여러 단계에서 끊임없이 조절되고 변형되는, 매우 역동적인 과정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그 조절의 열쇠는 우리 몸과 마음,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Melzack, R., & Wall, P. D. (1965). Pain mechanisms: a new theory. Science, 150(3699), 971–979. 통증의 ‘관문 조절설’을 최초로 제시하여 통증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인 논문입니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50.3699.971
  2. Gate Control Theory of Pain. (2023). Physiopedia. 관문 조절설의 핵심 원리, 즉 통증을 전달하는 가는 신경 섬유(A-delta, C)와 촉각을 전달하는 굵은 신경 섬유(A-beta)의 상호작용을 설명합니다. https://www.physio-pedia.com/Gate_Control_Theory_of_Pain
  3. Ossipov, M. H., Morimura, K., & Porreca, F. (2014). Descending pain modulation and its role in representing pathological pain. Current opinion in supportive and palliative care, 8(2), 143–151. 뇌에서 척수로 내려와 통증을 조절하는 ‘하행성 통증 조절’ 시스템의 역할과 기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연구입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288296/
  4. Fields, H. L. (2004). State-dependent opioid control of pain. Nature Reviews Neuroscience, 5(7), 565-575. 긍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뇌의 엔도르핀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통증을 조절하는 기전을 설명합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nrn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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