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일반> 1-1 통증의 재정의: 몸과 마음이 만드는 통증의 진실과 올바른 대처법

당신의 통증은 ‘친구’인가요, ‘적’인가요?

우리는 지금까지 통증이 단순한 감각이 아닌, 우리의 감정과 생각이 얽힌 복합적인 ‘경험’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복잡한 통증은 과연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놀랍게도 통증은 우리를 지키는 충직한 수호천사의 얼굴과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무서운 파괴자의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통증의 이 두 얼굴, 즉 ‘급성 통증’과 ‘만성 통증’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마운 통증’: 우리 몸을 지키는 충실한 경보 시스템 (급성 통증)

상상해 보세요. 만약 우리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펄펄 끓는 주전자에 손을 데고도 알아채지 못해 심각한 화상을 입고, 발목이 부러진 채로 계속 걸어 다니다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우리를 불쾌하게 만드는 통증은 사실 생존에 필수적인, 아주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급성 통증(Acute Pain)의 핵심 역할입니다. 급성 통증은 특정 질병이나 조직 손상에 대한 우리 몸의 즉각적이고 정상적인 반응입니다.[1] 마치 화재경보기가 연기를 감지하고 시끄럽게 울려 위험을 알리듯, 급성 통증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 더 큰 손상을 막도록 유도합니다.

일상 속 수호천사, 급성 통증의 예시

  • 날카로운 것에 베었을 때: 순간적인 통증이 즉시 손을 떼게 만들고,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 소독하게 하여 감염을 예방합니다.
  • 발목을 삐었을 때: 욱신거리는 통증 때문에 우리는 다친 발에 체중을 싣지 않고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이 통증 덕분에 손상된 인대가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 충치가 생겼을 때: 치아의 시큰거림은 우리를 치과로 이끌어 더 심각한 문제로 번지기 전에 치료를 받게 합니다.

이처럼 급성 통증은 원인이 명확하고, 그 원인이 해결되면(상처가 아물거나 병이 나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 기간 동안 불편함을 주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몸을 보호하는 필수적인 방어 시스템인 셈입니다. 이 경보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될 것입니다.

‘고장 난 경보 시스템’: 삶을 파괴하는 질병 (만성 통증)

문제는 이 고마운 경보 시스템이 고장 났을 때 발생합니다. 화재가 다 진압되었는데도 화재경보기가 밤낮없이 울려댄다고 상상해 보세요. 처음에는 유용했던 경보음이 점차 끔찍한 소음이 되어 일상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통증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성 통증(Chronic Pain)의 실체입니다. 일반적으로 급성 통증의 원인이 된 조직 손상이 치유되고도(보통 3개월에서 6개월) 통증이 계속 지속될 때, 이를 만성 통증이라고 정의합니다.[2] 이 단계에 이르면 통증은 더 이상 우리 몸을 보호하는 유용한 신호가 아닙니다. 통증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질병이 되어 우리 몸과 마음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3]

삶을 좀먹는 만성 통증의 영향

만성 통증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오래 아픈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의 삶을 전방위적으로 파괴하는 파괴자 역할을 합니다.

  • 정신 건강의 황폐화: 끝나지 않는 고통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낳고,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 통증 환자의 최대 85%가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보고됩니다.[4] 통증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 일상과 사회생활의 붕괴: 통증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수면장애), 집중력이 떨어져 업무 수행이 어려워집니다. 결국 직장을 잃거나 친구,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 신경계의 변화: 통증이 오래 지속되면 뇌와 척수를 포함한 중추신경계가 변성됩니다. 이를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라 부르는데, 신경이 과도하게 민감해져서 원래는 아프지 않아야 할 약한 자극(예: 옷이 스치는 느낌)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5] 그야말로 신경계가 통증을 기억하고 증폭시키는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한눈에 비교하는 급성 통증 vs 만성 통증

특징급성 통증 (수호천사)만성 통증 (파괴자)
기간일시적 (주로 3개월 미만)지속적 (3~6개월 이상)
원인명확한 조직 손상이나 질병최초 원인이 사라져도 지속되거나, 원인 불명확
기능보호 신호 (몸의 위험을 알림)질병 그 자체 (신호 기능 상실)
생물학적 의미생존에 필수적인 정상 반응신경계의 오작동으로 인한 병리적 상태
정신적 영향일시적인 불안, 불편감우울증, 불안장애, 분노, 절망감 등 심각한 후유증
치료 목표원인 제거 및 손상 부위 치유통증 관리, 기능 회복, 삶의 질 향상 등 다각적 접근

이 표는 우리 몸의 경보 시스템 역할을 하는 급성 통증과, 그 자체가 질병이 되어버린 만성 통증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요약합니다.

결론적으로, 통증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여기는 것은 절반만 보는 것과 같습니다. 급성 통증은 우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친구이지만, 이 친구를 제대로 달래지 못하고 방치하면 어느새 삶을 위협하는 무서운 적으로 변해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몸이 보내는 통증 신호가 ‘친구’의 목소리인지, ‘적’의 외침인지 구별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참고 자료

  1. Acute vs. Chronic Pain. (2022). Cleveland Clinic.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articles/12051-acute-vs-chronic-pain
  2. Treede, R. D., et al. (2019). Chronic pain as a symptom or a disease: the IASP Classification of Chronic Pain for the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11). PAIN, 160(1), 19–27.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344558/
  3. What is Chronic Pain?. Johns Hopkins Medicine. https://www.hopkinsmedicine.org/health/conditions-and-diseases/what-is-chronic-pain
  4. Arnow, B. A., et al. (2006). Prevalence of symptoms of depression and anxiety in patients with chronic pain. Pain Medicine, 7(S1), S51-S58.https://academic.oup.com/painmedicine/article/7/S1/S51/1852936
  5. Nijs, J., et al. (2021). Central sensitisation in patients with chronic pain: time for change in our clinical practice?. Pain, 162(5), 1308–1310.https://journals.lww.com/pain/fulltext/2021/05000/central_sensitisation_in_patients_with_chronic.2.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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