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일반> 1-1 통증의 재정의: 몸과 마음이 만드는 통증의 진실과 올바른 대처법

통증, 단순한 감각을 넘어 ‘경험’으로: IASP의 새로운 정의 깊이 보기

지난 글에서 우리는 통증이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통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의학과 과학계는 ‘아프다’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답변은 바로 국제통증연구학회(IASP,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IASP는 전 세계의 통증 전문가, 과학자, 임상의들이 모여 통증에 대한 지식을 증진하고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최고의 학술 단체입니다. 이들은 무려 41년 만인 2020년, 의학계의 통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기존의 정의를 전면 개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구 수정이 아니라, 통증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1]

41년 만의 개정, IASP의 새로운 통증 정의

그렇다면 IASP가 새롭게 내놓은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통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조직 손상과 관련되거나, 또는 그와 유사하게 묘사되는 불쾌한 감각 및 감정적 경험”

(An unpleasant sensory and emotional experience associated with, or resembling that associated with, actual or potential tissue damage.)[2]

얼핏 보면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문장 안에는 통증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적인 키워드들이 숨어있습니다. 이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고통을 올바르게 마주하는 첫걸음입니다. 지금부터 이 문장을 하나씩 해부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통증 정의의 핵심 키워드 파헤치기

IASP의 정의는 크게 세 가지 핵심 요소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감각적 경험’, ‘감정적 경험’, 그리고 ‘잠재적 손상 및 유사한 경험’입니다. 이 세 가지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통증’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감각적 경험’: 통증의 물리적 얼굴

이것은 우리가 통증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부분입니다. ‘찌르는 듯하다’, ‘타는 듯하다’, ‘욱신거린다’, ‘저리다’ 와 같이 통증의 물리적인 성질을 묘사하는 모든 것이 바로 감각적 경험에 해당합니다. 칼에 베었을 때의 날카로운 느낌, 화상을 입었을 때의 화끈거림, 관절염의 쑤시는 느낌 등 신체 부위에서 직접 느껴지는 감각이죠. 이 감각적 측면은 통증의 강도, 위치, 특징을 파악하여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2. ‘감정적 경험’: 통증의 심리적 얼굴

새로운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감정적 경험’을 통증의 필수 요소로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즉, 통증은 단순히 느끼는 것을 넘어, 불안, 공포, 슬픔, 분노, 우울과 같은 불쾌한 ‘감정’을 반드시 동반한다는 것입니다.[3] 허리가 계속 아프면 ‘이러다 영영 못 걷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다 보면 일상생활이 무너지면서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통증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반대로 우리의 마음 상태 역시 통증의 강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통증이라도 마음이 평온할 때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느껴지는 정도가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3. ‘잠재적 손상’과 ‘유사한 경험’: 보이지 않는 통증의 실체

이 부분이 바로 현대 통증 의학의 정수이자,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했던 지점을 설명해주는 대목입니다. 정의는 통증이 ‘실제적(actual)’ 손상뿐만 아니라 ‘잠재적(potential)’ 손상과도 관련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실제 조직 손상과 ‘유사하게 묘사되는(resembling)’ 경험 자체를 통증으로 인정합니다.[4]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MRI나 X-ray를 찍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환자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섬유근육통(Fibromyalgia)이나 신경병성 통증(Neuropathic Pain)입니다.[5] 이 질환들은 명백한 조직 손상이나 염증 없이도, 통증을 조절하는 신경계 자체에 문제가 생겨 ‘고장 난 경보 시스템’처럼 계속해서 통증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즉, 몸에 상처가 없어도 뇌와 신경계는 실제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IASP는 이처럼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는 통증 또한 진짜 ‘통증’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IASP 신(新) 통증 정의 분석표

핵심 키워드의미와 해석관련 예시
감각적 경험통증의 물리적 특성 (강도, 위치, 성질 등)날카로운, 욱신거리는, 쑤시는, 타는 듯한 느낌
감정적 경험통증이 동반하는 불쾌한 심리적 반응불안, 공포, 우울, 분노, 좌절감
잠재적 손상/유사한 경험조직 손상의 명백한 증거가 없어도 발생하는 통증섬유근육통, 신경병성 통증, 환상통(Phantom Limb Pain)

이 표는 IASP의 새로운 통증 정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요약하여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IASP의 새로운 정의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통증은 단순히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 신경계가 함께 만들어내는 매우 개인적이고 복합적인 ‘경험’입니다.[3] 따라서 “나는 아픈데 왜 검사 결과는 정상이냐”고 답답해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꾀병 아니냐”고 말하는 것에 상처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당신이 아프다고 느끼는 그 경험 자체가 바로 통증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1. IASP Announces Revised Definition of Pain. (2020).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 (IASP). https://www.iasp-pain.org/publications/iasp-news/iasp-announces-revised-definition-of-pain/
  2. Raja, S. N., et al. (2020). The Revised IASP definition of pain: concepts, challenges, and compromises. PAIN, 161(9), 1976–1982.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380534/
  3. What is pain?. (2020). The British Pain Society. https://www.britishpainsociety.org/about/what-is-pain/
  4. Cohen, M., et al. (2020).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ain (IASP) Updates the Definition of Pain. JOSPT. https://www.jospt.org/do/10.2519/jospt.blog.20200812/full/
  5. Martínez-Lavín, M. (2022). Centralized nociplastic pain causing fibromyalgia: an emperor with no cloths? Clinical Rheumatology, 42(1), 1-5.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956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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