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신경의 통로를 좁게 만드나? 퇴행성 변화의 합작품
이전 글에서 우리는 척추관 협착증이 신경이 지나가는 ‘터널’ 자체가 좁아져 발생하는 문제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멀쩡했던 터널을 이토록 좁아지게 만드는 걸까요? 척추관 협착증은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척추의 여러 구조물들이 동시에 낡고 변형되는 ‘퇴행성 변화의 합작품’입니다. 이 합작품의 세 주역인 후관절, 황색인대, 추간판이 각각 어떻게 변하여 신경의 숨통을 조여오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 왜 ‘척추관 신경압박’이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지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원인 1: 옆과 뒤에서 자라나는 뼈, 후관절의 비후 (Facet Joint Hypertrophy)
척추뼈의 뒤쪽에는 위아래 뼈를 안정적으로 연결해주는 한 쌍의 작은 관절이 있는데, 이를 ‘후관절’이라고 합니다. 이 후관절은 우리 몸의 다른 관절들처럼 나이가 들면서 연골이 닳고 염증이 생기는 퇴행성 관절염을 겪게 됩니다.1 불안정해진 관절을 어떻게든 안정시키기 위해 우리 몸은 관절 주변의 뼈를 덧붙여 두껍게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뼈가 가시처럼 자라나게 됩니다. 이를 ‘골극(Bone Spur)’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 골극이 척추관 안쪽, 즉 신경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자라나면서 신경 통로의 양옆과 뒤쪽을 뾰족하게 찌르고 좁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는 ‘척추관 신경압박’을 유발하는 매우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원인 2: 뒤에서 두껍게 누르는 압박, 황색인대의 비후 (Ligamentum Flavum Thickening)
척추관의 바로 뒤쪽에는 척추뼈들을 서로 연결해주며 척추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황색인대’라는 구조물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황색인대는 고무줄처럼 탄력이 좋아 허리를 구부렸다 펼 때 유연하게 늘어났다 줄어들지만, 노화가 진행되면서 탄력을 잃고 점차 두꺼워지며 딱딱하게 굳어집니다.2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진(비후) 황색인대는 척추관 뒤쪽에서 신경 다발을 넓게 눌러 ‘척추관 신경압박’을 일으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이 황색인대의 비후는 척추관 단면적을 줄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3
원인 3: 앞에서 밀고 나오는 압력, 추간판 팽륜 (Disc Bulging)
척추관의 앞쪽에서는 낡은 추간판(디스크)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급성으로 터져 나오는 디스크 파열(탈출)과 달리, 퇴행성 변화가 오래 진행된 디스크는 내부의 수분이 빠져나가 전체적으로 탄력을 잃고 납작해지면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팽륜’ 상태가 됩니다.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가 옆으로 퍼지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부풀어 오른 디스크는 척추관의 앞쪽 공간을 침범하여 뒤쪽에 있는 신경을 압박하게 됩니다. 이는 날카롭게 신경을 찌르는 디스크 파열과는 다른, 뭉툭하고 꾸준한 압박으로 작용하여 만성적인 ‘척추관 신경압박’에 기여합니다.
원인 | 압박 위치 | 변화 과정 (비유) | 신경에 미치는 영향 |
---|---|---|---|
후관절 비후 | 척추관의 양옆, 뒤쪽 | 오래된 관절에 뾰족한 뼈(골극)가 자라남 | 신경 통로를 찌르고 좁게 만듦 |
황색인대 비후 | 척추관의 정중앙 뒤쪽 | 낡은 고무줄처럼 탄력을 잃고 두꺼워짐 | 신경 다발을 넓게 눌러 압박함 |
추간판 팽륜 | 척추관의 앞쪽 |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전체적으로 부풀어 오름 | 신경을 앞으로부터 뭉툭하게 밀어냄 |
결론적으로 ‘척추관 신경압박’은 이 세 가지 퇴행성 변화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신경의 ‘고속도로’를 사방에서 조여오는 현상입니다. 앞으로는 디스크가, 뒤로는 황색인대가, 양옆에서는 후관절이 신경의 공간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성적이고 다발적인 압박은 신경으로 가는 혈액 공급을 방해하고, 결국 걷기 힘든 통증과 다양한 신경학적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척추관 신경압박’이 만들어내는 가장 특징적인 증상, ‘신경인성 파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척추관 협착증”. N 의학정보. Available from: https://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149
- Sakai, Y., Ito, K., Hida, T., et al. (2015). “Mechanism of Ligamentum Flavum Hypertrophy in Patients with Lumbar Spinal Canal Stenosis-The Role of Mechanical Stress and Inflammatory Cytokines”. Journal of Orthopaedic Research, 33(10), 1445-1452. (이론적 근거 제공)
- 박정율. (2005). “요부 척추관 협착증의 병태생리”. Neurospine, 2(4), 306-311. Available from: https://www.e-neurospine.org/upload/pdf/01-박정율-완.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