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증거 ② 촉진(觸診): 손끝으로 척추를 읽다
눈으로 환자의 자세와 걸음걸이라는 첫 번째 몸의 증거를 확인했다면, 이제 의사의 손이 나설 차례입니다. 진찰의 두 번째 단계인 ‘촉진(觸診, Palpation)’은 의사가 손끝의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 환자의 피부 밑에 숨겨진 문제들을 직접 만져보고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숙련된 의사의 손은 때로는 MRI나 X-ray가 보여주지 못하는 근육의 긴장도나 미세한 구조의 이상까지 찾아내는 매우 정밀한 스캐너가 될 수 있습니다.
촉진은 단순히 아픈 곳을 눌러보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는 뼈의 정렬부터 근육의 상태까지, 척추와 그 주변 구조물들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체계적인 수사 과정입니다. 의사는 이 과정을 통해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결정적인 몸의 증거들을 수집합니다.
뼈의 증거: 척추뼈를 하나하나 만져보는 이유
의사는 환자를 엎드리게 한 후, 목부터 꼬리뼈까지 척추의 중심선을 따라 튀어나온 뼈, 즉 ‘극돌기(Spinous process)’를 엄지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눌러봅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중요한 몸의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 계단 징후 (Step-off sign): 정상적인 척추 극돌기는 부드러운 언덕처럼 연속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부위를 눌렀을 때, 마치 계단처럼 푹 꺼지는 느낌이 든다면 이는 위쪽 척추뼈가 아래 척추뼈보다 앞으로 미끄러진 ‘척추전방전위증’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소견입니다.[1]
- 국소 압통 (Localized tenderness): 다른 곳은 괜찮은데 유독 한 부위의 극돌기를 눌렀을 때 “악” 소리가 날 정도의 날카로운 통증이 유발된다면, 이는 단순 근육통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척추의 압박 골절, 감염, 또는 드물게는 종양과 같이 뼈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붉은 깃발’에 해당하는 몸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근육의 증거: 돌처럼 굳어버린 근육의 외침
뼈의 정렬을 확인한 후에는, 척추 양옆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척추 주위근(Paraspinal muscles)을 만져봅니다. 이곳에서는 근육이 보내는 몸의 증거를 찾습니다.
- 근육 경직 (Muscle spasm): 통증이 심한 환자의 허리를 만져보면, 근육이 부드럽지 않고 마치 돌처럼 단단하게 뭉쳐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통증으로 인해 우리 몸이 척추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근육을 수축시키는 방어기제입니다. 이 근육 경직 자체가 또 다른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압통점 (Trigger points): 근육을 깊게 눌렀을 때, 유독 더 아프게 느껴지는 콩알 같은 작은 멍울이 만져지기도 합니다. 이를 ‘압통점’ 또는 ‘유발점’이라고 부르며, 이 부위를 누르면 환자가 평소에 느끼던 허리 통증이나 다리 저림이 그대로 재현되기도 합니다. 이는 ‘근막통증 증후군’을 진단하는 중요한 몸의 증거입니다.[2]
촉진 부위 | 찾고자 하는 몸의 증거 | 의심할 수 있는 질환 |
---|---|---|
척추 극돌기 | 움푹 꺼지는 느낌 (계단 징후) 특정 부위의 극심한 압통 | 척추전방전위증 척추 골절, 감염, 종양 |
척추 주위 근육 | 돌처럼 단단한 근육 경직 매우 아픈 멍울 (압통점) | 급성/만성 요추 염좌 근막통증 증후군 |
이처럼 촉진은 의사의 손끝 감각과 해부학적 지식이 결합된 고도의 진찰 기술입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봄으로써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했다면, 다음 단계는 실제로 척추를 움직여보며 기능적인 문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당신의 허리가 얼마나 유연하고, 어떤 움직임에서 통증이 나타나는지를 평가하는 ‘운동 범위 검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Magee, D. J. (2014). Orthopedic physical assessment (6th ed.). Saunders Elsevier.
- Travell, J. G., & Simons, D. G. (1999). Myofascial pain and dysfunction: The trigger point manual (Vol. 1). Williams & Wilk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