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몸의 증거를 종합하여 진실에 다가서다
아홉 편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의사가 어떻게 환자의 몸에서 ‘몸의 증거’를 찾아내는지를 추적해 왔습니다. 우리는 진료실에 들어서는 환자의 걸음걸이(시진)에서 시작하여, 의사의 손끝이 척추뼈와 근육의 이상을 읽어내고(촉진), 굳어버린 척추의 외침을 듣고(운동 범위 검사), 약해진 근력과 무뎌진 감각, 사라진 반사 신경을 통해 신경의 상태를 파악하며(신경학적 검사), 마지막으로 숨겨진 범인을 찾기 위한 특수 검사까지, 진찰의 전 과정을 함께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편적인 검사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닙니다. 이것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몸의 증거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일관된 그림, 즉 ‘정확한 진단’이라는 진실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마치 유능한 탐정이 사건 현장의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범인의 윤곽을 그려나가듯, 의사는 이 모든 몸의 증거를 종합하여 질병의 실체에 다가섭니다.
단서와 증거의 만남: 진단이 완성되는 순간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의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환자의 이야기, 즉 ‘통증의 단서’와 이번 시리즈에서 찾아낸 ‘몸의 증거’가 서로 일치할 때, 비로소 의사는 확신을 갖고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허리를 숙이면 엉덩이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오듯 저려요”(통증의 단서)라고 말하고, 진찰 결과 실제로 엄지발가락을 들어 올리는 힘이 약하고(몸의 증거 – 근력), 발등의 감각이 둔하며(몸의 증거 – 감각), 하지 직거상 검사에서 30도만 들어도 통증이 재현된다면(몸의 증거 – 신경 긴장), 이 세 가지 증거는 모두 ‘제5번 요추 신경근 압박’이라는 하나의 진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1]
구분 | 환자의 이야기 (통증의 단서) | 의사의 진찰 (몸의 증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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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 진단의 방향을 제시하는 ‘주관적 정보’ | 진단을 확증하는 ‘객관적 정보’ |
특징 | 통증의 성격, 양상, 시간 등 환자만이 알 수 있는 정보 | 근력, 감각, 반사 등 의사가 직접 확인하고 측정할 수 있는 정보 |
궁극적 목표 | 두 정보의 일치를 통해, 가장 가능성 높은 진단을 내리고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 최적의 치료를 시작하는 것 |
임상적 진찰의 중요성: 왜 MRI보다 진찰이 먼저인가?
많은 환자들이 “일단 MRI부터 찍어보면 안 되나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MRI는 척추의 ‘구조’를 보여줄 뿐, ‘기능’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MRI에서 디스크가 튀어나와 보여도 아무 증상이 없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MRI는 깨끗한데 심한 통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의 이야기와 신체 검사를 통해 얻은 ‘임상적 증거’가 없는 MRI 소견은, 그저 의미 없는 그림자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2] 숙련된 의사는 환자의 몸이 보내는 몸의 증거를 통해 MRI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이미 알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진단의 정확도를 높입니다.
진단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면, 이제 구체적인 질병의 세계로 들어가 볼 시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가장 흔하지만 오해도 많은 질환, 신경을 누르지 않는 디스크 병변인 <신경근 자극을 동반하지 않는 추간판 퇴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Deyo, R. A., Rainville, J., & Kent, D. L. (1992). What can the history and physical examination tell us about low back pain?. JAMA, 268(6), 760–765.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article-abstract/400438
- Chou, R., Qaseem, A., Snow, V., Casey, D., Cross, J. T., Jr, Shekelle, P., & Owens, D. K. (2007). Diagnosis and treatment of low back pain: a joint clinical practice guideline from the 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 and the American Pain Society. Annals of Internal Medicine, 147(7), 478–491. https://www.acpjournals.org/doi/10.7326/0003-4819-147-7-200710020-0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