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통 Macnab> 08. 통증의 단서: 당신의 이야기가 MRI보다 정확할 수 있다

통증의 단서 ①: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Onset)

통증이라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수사 과정에서, 의사가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통증의 단서는 바로 ‘사건의 발단’, 즉 통증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는 통증의 성격을 규정하고, 수많은 용의선상(질환 목록)에서 가장 유력한 범인을 좁혀나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어제 물건을 들다가 갑자기”와 “몇 달 전부터 나도 모르게 서서히”라는 두 개의 진술은, 의사의 머릿속에 완전히 다른 진단 지도를 펼쳐놓습니다.

급성 발병 (Acute Onset): 명확한 사건, 명확한 원인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허리가 안 펴져요.”
“무거운 화분을 들다가 ‘뚝’ 하는 느낌과 함께 주저앉았어요.”

이처럼 특정한 사건(event)이나 외상(trauma)과 함께 갑작스럽게 시작된 통증은 대부분 ‘기계적 요통(Mechanical back pain)’일 가능성이 높습니다.[1] 이는 우리 척추 구조물 어딘가에 물리적인 손상이 발생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통증의 단서입니다.

  • 급성 요추 염좌: 허리 근육이나 인대가 순간적으로 늘어나거나 미세하게 찢어진 경우입니다.
  • 급성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갑작스러운 압력으로 인해 디스크가 터져 나와 신경을 누르는 경우입니다.
  • 척추 압박 골절: 골다공증이 심한 노인이 가볍게 주저앉거나, 혹은 강한 외상으로 인해 척추뼈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경우입니다.

이처럼 급성으로 발생한 통증은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며, 통증의 시작 시점과 계기를 환자 스스로 뚜렷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진적 발병 (Gradual/Insidious Onset): 소리 없는 침입자

“언제부터 아팠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몇 달 전부터 그냥 은근히 아프기 시작했어요.”
“최근 1년 사이에 걷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반면, 특별한 계기 없이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시작되고, 점차 악화되는 양상의 통증은 전혀 다른 종류의 질병을 가리킵니다. 이는 척추의 구조가 서서히 변해가는 퇴행성 질환이나, 우리 몸 내부에서 만성적인 염증 반응이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통증의 단서가 됩니다.

  • 퇴행성 질환: 나이가 들면서 디스크의 수분이 빠지고, 관절이 두꺼워지면서 발생하는 척추관 협착증이나 퇴행성 척추전방전위증 등이 대표적입니다. 통증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발생합니다.
  • 염증성 척추관절병증: 강직성 척추염과 같이, 면역 체계의 이상으로 척추에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주로 40세 이전의 젊은 나이에 뚜렷한 외상 없이 서서히 시작되는 염증성 허리 통증이 특징입니다.
  • 종양: 드물지만, 척추에 발생한 종양이 서서히 자라나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증 시작 양상환자의 대표적인 표현의사가 의심하는 주요 질환
급성 발병 (Acute Onset)“어제 삐끗했어요”, “갑자기 허리가 안 움직여요”요추 염좌, 급성 디스크 탈출증, 척추 골절
점진적 발병 (Gradual Onset)“언제부턴가 서서히 아파요”, “점점 더 심해져요”척추관 협착증, 퇴행성 전방전위증, 염증성 허리 통증

이처럼 당신이 기억하는 통증의 시작 시점과 그 양상은, 의사가 올바른 진단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진료 전, 내 통증이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서서히’ 시작되었는지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의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증의 단서 중 하나입니다.

통증의 시작을 파악했다면, 다음으로 의사가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이 그 통증을 움직이는가?”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통증을 악화시키거나 완화시키는 요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1. Deyo, R. A., & Weinstein, J. N. (2001). Low back pain.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44(5), 363–370.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2001020134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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