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의 나침반: 병력 청취의 7가지 황금률 (OPQRST)
진료실에서 의사가 던지는 질문들은 결코 무의미하게 오가는 대화가 아닙니다. 특히 통증을 평가할 때, 전 세계의 의사와 간호사, 응급 구조사들은 환자의 주관적인 통증 경험을 객관적인 정보로 전환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고안된 프레임워크를 사용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OPQRST’라는 기억술입니다.[1] 이는 통증의 7가지 핵심적인 특성을 평가하는 질문들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명의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진단의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환자 역시 이 7가지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태를 이 틀에 맞추어 미리 생각해 본다면, 짧은 진료 시간 동안 의사에게 훨씬 더 정확하고 유용한 통증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빠르고 정확한 진단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통증을 해부할 7개의 황금 열쇠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항목 | 핵심 질문 | 의사가 찾고자 하는 통증의 단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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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 Onset (시작) | “언제, 어떻게 아프기 시작했나요?” | 통증이 갑자기 시작되었는지(급성), 서서히 시작되었는지(만성)를 파악하여 질병의 성격을 구분합니다. (예: “물건 들다 삐끗했어요” vs. “몇 달 전부터 은근히 아파요”) |
P – Provocation / Palliation (악화/완화 요인) | “어떤 자세나 활동이 통증을 더 심하게, 혹은 편안하게 만드나요?” | 특정 자세(숙일 때 vs. 펼 때)나 활동(걸을 때 vs. 쉴 때)에 따른 통증 변화를 통해 디스크, 협착증, 염증성 질환 등을 감별하는 가장 중요한 통증의 단서입니다. |
Q – Quality (질) | “통증이 어떤 느낌인가요?” | 통증의 ‘질감’을 통해 원인을 추정합니다. 욱신거리고 쑤시는 느낌(근육성), 칼로 베는 듯 찌릿하고 저릿한 느낌(신경성), 타는 듯한 느낌(신경병증성) 등은 각각 다른 원인을 시사합니다. |
R – Radiation (방사) | “통증이 혹시 다른 곳으로 뻗치나요?” | 통증이 엉덩이나 다리의 특정 부위로 뻗어 나가는지, 그 경로는 어디인지를 파악하여 압박받는 신경의 위치를 예측합니다. (예: 좌골신경통) |
S – Severity (심한 정도) |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을 0점,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통증을 10점이라고 할 때, 지금 몇 점 정도 아프신가요?” |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강도를 객관적인 숫자로 표현하여, 치료의 필요성과 치료 후 효과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삼습니다. |
T – Timing (시간) | “하루 중 특정 시간대에 더 아픈가요?” | 통증이 나타나는 시간적 패턴을 통해 질병을 감별합니다. 특히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심한 통증과 뻣뻣함은 염증성 허리 통증의 강력한 단서가 됩니다. |
단순한 질문 그 이상의 의미
이 OPQRST 질문들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각각의 답변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40대 남성이 무거운 물건을 들다 갑자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O), 허리를 숙이면 더 아프며(P),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전기가 오듯 저립니다(R, Q)”라는 이야기는 ‘급성 허리디스크 탈출증’이라는 진단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반면, “20대 남성이 몇 달에 걸쳐 서서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O, T), 아침에 특히 뻣뻣하며(T), 움직이면 오히려 통증이 나아집니다(P)”라는 이야기는 ‘염증성 척추관절병증’을 먼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OPQRST라는 체계적인 틀을 통해 수집된 통증의 단서들은, 의사가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가장 확률 높은 진단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음 장부터는 이 7가지 황금률을 하나씩 깊이 있게 파헤쳐 보며, 각각의 통증의 단서가 어떤 질병을 가리키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Bickley, L. S., Szilagyi, P. G., & Hoffman, R. M. (2017). Bates’ Guide to Physical Examination and History Taking (12th ed.). Wolters Klu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