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과정: 숨어있는 염증을 찾는 여정
염증성 허리 통증은 그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일반적인 허리 통증과 혼동되기 쉬워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나이에 무슨 허리병이냐”는 주변의 오해 속에서, 혹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별 이상 없다”는 말만 듣다가 귀중한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염증성 허리 통증의 진단 과정은 마치 탐정이 여러 단서를 모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과 같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 신체에서 나타나는 신호, 혈액 속의 증거, 그리고 영상으로 포착한 흔적들을 종합하여 숨어있는 염증의 실체를 밝혀냅니다.[1]
1단계: 가장 중요한 단서, 환자의 이야기 (병력 청취)
모든 진단은 환자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염증성 허리 통증을 진단하는 데 있어 병력 청취는 그 어떤 검사보다도 중요합니다. 류마티스내과 의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통해 단서를 수집합니다.
- 언제부터, 어떻게 아프기 시작했나요? (40세 이전, 3개월 이상 서서히 시작되었는가?)
- 아침에 허리가 뻣뻣한가요? 얼마나 오래 지속되나요? (30분 이상의 조조강직)
- 가만히 쉬거나 자고 일어나면 더 아픈가요, 아니면 움직이면 좀 나아지나요? (활동 시 호전)
- 통증 때문에 밤에 잠에서 깬 적이 있나요?
- 허리 외에 엉덩이 깊숙한 곳이 번갈아 가며 아픈 적이 있나요? (교대성 둔부 통증)
- 과거에 눈에 염증(포도막염)이나, 발뒤꿈치 통증(부착부염), 피부 건선 등을 앓은 적이 있나요?
- 가족 중에 비슷한 질환을 앓고 있는 분이 있나요?
이 질문들에 ‘예’라고 답하는 항목이 많을수록, 염증성 허리 통증의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2단계: 몸이 말하는 증거 (신체 검사)
다음으로 의사는 환자의 몸을 직접 진찰하여 객관적인 증거를 찾습니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뒤로 젖히고, 옆으로 구부리고, 회전시켜보며 척추의 운동 범위가 얼마나 제한되었는지 측정합니다. 또한, 엉덩이 부위의 천장관절을 직접 눌러보거나 특정 검사 자세를 취하게 하여 통증이 유발되는지 확인합니다. 발뒤꿈치나 갈비뼈 등 다른 인대 부착부의 압통 여부도 중요한 진단 단서가 됩니다.
3단계: 혈액 속의 흔적 (혈액 검사)
환자의 이야기와 신체 검사에서 염증성 허리 통증이 강력히 의심되면, 혈액 검사를 통해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합니다.
- 염증 수치 (ESR, CRP): 우리 몸에 염증이 있을 때 수치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이 수치가 정상이라고 해서 병이 없는 것은 아니며, 병의 활성도를 참고하는 지표로 사용됩니다.
- HLA-B27 유전자 검사: 이전 장에서 설명했듯이, 이 유전자는 진단의 확진 검사는 아니지만, 진단에 매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특히 젊은 환자에게 염증성 허리 통증이 있을 때 이 유전자가 양성이라면 진단에 큰 도움이 됩니다.[2]
4단계: 결정적 증거, 눈으로 보는 염증 (영상 검사)
최종적으로 영상 검사를 통해 관절의 염증과 손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합니다.
| 영상 검사 | 주요 역할 | 세부 내용 |
|---|---|---|
| X-ray | 구조적 변화 확인 | 질병 초기에는 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병이 진행되면 천장관절염으로 인해 관절 간격이 불분명해지거나, 척추에 ‘대나무 척추’와 같은 특징적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MRI | 초기 염증 발견 | X-ray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훨씬 전 단계의 ‘활동성 염증’을 발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검사입니다.[3] 천장관절이나 척추뼈의 골수 부종(Bone marrow edema) 소견은 염증성 허리 통증의 매우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
이처럼 염증성 허리 통증의 진단은 어느 한 가지 검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환자의 증상, 신체 검진, 혈액 검사, 영상 검사 결과를 모두 종합하는 퍼즐 맞추기와 같습니다.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확한 진단이 내려져야, 비로소 염증의 불길을 잡기 위한 올바른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 치료의 첫걸음인 약물 치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Sieper, J., et al. (2009). The Assessment of SpondyloArthritis international Society (ASAS) handbook: a guide to assess spondyloarthritis. Annals of the Rheumatic Diseases, 68(Suppl 2), ii1-ii44. https://ard.bmj.com/content/68/Suppl_2/ii1
- Braun, J., & Sieper, J. (2007). Ankylosing spondylitis. The Lancet, 369(9570), 1379-1390.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et/article/PIIS0140-6736(07)60635-7/fulltext
- Rudwaleit, M., et al. (2005). The development of Assessment of SpondyloArthritis international Society classification criteria for axial spondyloarthritis (part II): validation and final selection. Annals of the Rheumatic Diseases, 68(6), 777-783. https://ard.bmj.com/content/68/6/777.long
